수담(手談)은 사실, 바둑의 별칭이다. 말을 주고받지 않고도 상대방의 의사를 능히 헤아릴 수 있는 행위로서의 바둑이라는 뜻인데, 손으로 나누는 대화가 예전에는 바둑뿐이어서 그렇게 통용된 게 아닐까 싶다. 뜻으로만 보자면 보드게임도 수담이라 표현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해 손으로 게임을 하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은 혼자 즐기는 컴퓨터 게임과 달리 직접 대면해 게임을 하는 색다른 맛이 있다. 온라인 게임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함께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보드게임에 푹 빠진 마니아들의 집합소가 바로 UNIST 보드게임 동아리 ‘수담’이다.
보드게임은 그 종류도 다양해 1만여 종에 이른다. 영토 확장, 재산 증식은 물론 환경보호, 남녀평등과 같이 사회성이 높은 소재가 더해진 보드게임이 나왔을 정도로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지난 2012년 시작된 수담에도 8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120개가 넘는 보드게임이 동아리방을 가득 채웠다.
보드게임의 특성에 맞게 자율성 보장
보드게임은 여러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놀이인 만큼 사람 간의 의사소통을 개선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주변 관계보다 학업과 취업이 우선시되며 경쟁에 지친 학생들에게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점은 수담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2학기부터 동아리 회장을 맡은 강호진(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17) 학생은 수담에 대해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학생들끼리 모여 자유롭게 게임을 즐기는 모임”이라고 소개하며 “보드게임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더 소통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건전한 취미 생활을 시간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 또한 수담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 정해진 시간에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수 있는데, 수담의 회원들은 게임을 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동아리방을 찾아 편하게 게임을 즐긴다. 수담의 동아리 운영방식은 말 그대로 ‘프리 스타일’인 셈이다.
“유일한 정기 활동은 금요일 저녁을 보드게임의 날로 정해놓은 것 정도입니다. 개강과 종강 시기가 되면 전체 회원들이 만나는 자리를 갖기도 하고요. 일 년에 한 번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오목대회를 개최하고, 축제 기간에는 보드게임 부스를 운영하는데, 이 모든 것도 참여 의사를 가진 회원들이 나설 뿐 동아리 활동에 강제성은 부여하지 않아요.”
최민준(기초과정부 18) 학생은 ‘다 같이 놀자!’는 편한 분위기 덕분에 동아리방을 더 자주 찾게 된다고 말한다.
공평한 조건 아래 펼치는 지능 싸움이 매력
수담의 회원은 총 34명으로,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 저녁에 모여 3~4가지의 보드게임을 함께 즐긴다. 보드게임의 승패를 좀 더 짜릿하게 맛볼 수 있도록 동아리에서 포커 칩을 ‘수담 코인’으로 활용, 보드게임에 한 번 참가할 때마다 15개씩 지급한다. 게임에서 이길 때마다 칩이 늘어나는데, 종강 모임 때 각 회원이 지닌 칩을 정산해 1등에서 3등까지 상품을 전달한다. 텀블러부터 간식, 컵라면과 같이 일상에 꼭 필요한 물품부터 거짓말탐지기처럼 재미있는 아이디어 상품까지 각양각색이다. 보드게임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장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칩을 보유하고 있는 회원은 누굴까. 많은 이들의 지목을 받은 회원은 한준구(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17) 학생. 회원들은 그를 전략적인 게임의 능력자라고 말한다.
“보드게임은 지능 싸움이 된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모든 사람이 공평한 조건에서 머리싸움만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거든요. 공부할 때 머리를 쓰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그만이죠. 그래서 전략게임을 좋아하는데, 좋아하기 때문에 잘하나 봐요.(웃음)”
여러 전략게임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테라포밍 마스’. 이 보드게임의 목표는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수많은 규칙을 지키며 카드를 선택하는 것부터 자원 배치에 이르기까지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게 많고, 매번 새로운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여름방학에 테라포밍 마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답니다. 동아리에서 예선전을 거쳐 제가 대표로 참가하게 됐습니다. 비록 본선에서 탈락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았어요.”
배경 설정부터 게임 속 요소까지 과학적 근거를 두고 있는 보드게임이라 UNISTAR라면 누구나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그 밖에 ‘5분 던전’, ‘왕좌의 게임’이 최근 수담 회원들이 즐기는 보드게임이다. 보통 한 게임을 치르는 데 3~4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 앉아 있기 어려운 회원들은 순발력을 요구하는 ‘할리갈리’나 심리 싸움이 필요한 ‘챠오챠오’를 즐기기도 한다. 강호진 학생은 챠오챠오에 강한데, 언제나 웃는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어 눈빛이나 표정으로 속내를 읽기 어렵다는 것이 회원들의 말이다.
오목대회와 축제용 보드게임카페로 소통하다
자유로운 분위기로 운영되는 수담이지만 연중행사로 오목대회 개최와 축제 기간 내 보드게임카페 운영은 꼭 챙기는 편이다. 오목대회는 1학기 중에 재학생을 대상으로 연다. 강호진 학생은 “동아리에서 가장 넉넉하게 보유한 게임도구가 바둑이다 보니, 종목이 오목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며 아쉬워했다.
“지난 대회에서는 무패 전승을 한 학생이 우승했어요. 우리 학교에도 오목 고수가 있더군요. 경기를 지켜보며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축제 기간에는 보드게임카페를 운영해 UNISTAR들에게 즐길 거리를 선사한다. 구윤회(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17) 학생은 보드게임이 다수의 참여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빠르게 배우고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축제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강조한다.
“저는 호진이와 친구 사이인데, 동아리 자랑을 정말 많이 해서 수담에 가입하게 됐어요. 보드게임카페 운영에 참여했는데, 아침 일찍부터 부스 준비하랴 게임 설명하랴 정신없었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과 돈독해졌고 소소한 추억이 쌓였어요. 수담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보드게임이 많아졌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돼 동아리에서 하는 건 뭐든지 열심히 하게 됩니다.”
축제 기간에 보드게임을 접한 후 2학기에 수담에 가입한 회원이 바로 진일정(기초과정부 18) 학생이다. 온라인 게임은 심리전이 어렵지만, 보드게임은 손 떨림, 눈동자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상대의 패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 즐겁다며 3개월간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저는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다양한 보드게임을 경험해보는 단계에 있어요. 한번은 ‘매직 더 개더링’이라는 게임을 배우고 싶어서 정기모임이 끝난 후 처음 보는 선배에게 부탁을 했는데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식사까지 챙겨주시더군요. 그 배려가 참 따뜻했습니다. 보드게임이라는 매개체가 있어 어색하지도 않았고요. 수담에서는 언제든 부담 없이 놀고 갈 수 있어 좋아요.”
동아리방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사라진다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담 회원들이 말하는 보드게임의 매력은 반대로 생각하면 여럿이 모여야 가능하고, 손품을 팔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간편한 것이 언제나 좋을 순 없는 것처럼 때로는 번거로움이 더 아름다울 때도 존재한다. 수담과 함께하는 이들은 번거로움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