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이디공간은 올해 1월 초에 세워진 따끈따끈한 스타트업이다. 양지현 대표(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18)가 김관명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와 공동으로 설립했는데, 사업 아이템은 큐브에 미로를 결합한 ‘메이즈 큐브’다. 기말 과제에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제품화 개발이 완료돼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1974년 헝가리의 건축학 교수 에르뇌 루빅(Ernoe Rubik)이 학생들에게 구조 기하학적 개념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발명한 ‘루빅스 큐브(Rubik’s Cube)’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장난감 중 하나다. 이 큐브는 26개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돌려 정육면체 각 면의 색을 동일하게 맞추는 퍼즐 게임을 하는 데 쓰인다. 얼마나 빠른 시간 내 맞추느냐가 관건이라 빛의 속도로 손을 놀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실제 큐브 달인들은 최단 회전 횟수를 전략적으로 계산해 0.00초 단위의 속도 경쟁을 벌인다.
이렇게 루빅스 큐브가 스피드 게임에 치중하는 데 반해, (주)아이디공간 양지현 대표가 개발한 메이즈 큐브는 미로를 빠져나갈 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큐브에 미로를 결합해 3차원 경로를 구축하며 구슬을 탈출시키는 보다 고차원적인 퍼즐 게임인 셈이다. 26개의 조각들을 돌려 맞추는 것은 동일하지만 색깔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블록 표면에 새겨진 미로의 경로를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맞춰진 경로를 따라 구슬을 이동시켜 탈출시키는 게 목표다.
메이즈 큐브의 묘미는 사용자가 직접 다양한 경로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퍼즐을 푸는 성공 공식이 정해져 있는 루빅스 큐브와 다른 점이다. 게다가 여러 개의 구슬을 동시에 빼내기, 특정 색깔의 블록 지나지 않기 등 자신만의 게임 방식까지 고안할 수 있어 아이의 두뇌 개발과 집중력 향상에 효과적이다.
“출구를 향한 길을 찾기 위해 아이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속도와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방향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라 아이의 창의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창의 교구입니다.”
어린이들의 창의력뿐만 아니라 인지 능력 강화, 근육 재활 운동 등에도 좋아 노인 치매 예방에도 활용할 수 있다. 지난 2월 사용자 반응 조사를 위해 한 노인복지관을 찾았는데, 메이즈 큐브를 사용해 본 노인들이 기존 치매 교구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좋은 평가를 내놓았다.
기말 과제에서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
메이즈 큐브는 양지현 대표가 2016년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시절 수강했던 3D 캐드(CAD) 수업의 기말 과제에서 탄생했다. 과제명은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를 3D 캐드로 직접 설계하라’.
“창의성 방법들을 적용하며 3D 캐드로 여러 블록들을 실험해 보면서 3차원의 큐브와 미로가 결합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당시 수업을 이끌었던 김관명 교수는 수강생 30명의 과제 중 단연 돋보이는 아이디어였다고 칭찬했다.
“아무리 창의성이 뛰어난 아이디어라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메이즈 큐브는 창의적이면서 실제로 사람들에게 쓰일 수 있는 아이디어였습니다.”
14년간의 현장 경험으로 다져진 김관명 교수의 날카로운 촉은 메이즈 큐브를 보자마자 발동했다. 우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국제 디자인 대회에 출품해 볼 것을 권했다. 그 결과 2017년 8월 미국의 ‘스파크 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세계 3대 디자인 대회 중 하나인 독일의 ‘레드닷 어워드’에서도 수상했다. 이와 동시에 양 대표는 김관명 교수의 지도를 받아 2017년 3월 특허 출원을 추진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 주관으로 디자인 주도형 창업을 지원하는 디자인융합벤처창업학교에 지원하는 등 창업의 수순을 차근차근 밟았다.
“디자인융합벤처창업학교는 총 40팀의 창업캠프 수료팀 중 10개 팀을 선발해 창업을 지원하는 정부 사업입니다. 메이즈 큐브는 최종 평가회에서 가장 많은 모의투자를 받아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프로젝트 성과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꾸준히 사업화를 진행했습니다.”
스마트폰보다 더 재미있는 메이즈 큐브
이렇게 태생부터 남달랐던 메이즈 큐브는 양지현 대표가 참여한 2017년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의 졸업 전시회인 ‘UNIST 디자인 쇼’를 통해 일반에 첫선을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좋아할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게 정말 될까 싶었는데, 여섯 살짜리 아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메이즈 큐브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어요.”
즐거워하는 사용자의 모습을 직접 확인한 양 대표는 비로소 메이즈 큐브를 꼭 시장에 출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저 많은 이들이 즐겁게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점을 보완해야 했다. 경로가 단순해 구슬을 쉽게 뺄 수 있다는 문제와 큐브를 돌리는 중간에 블록 틈새로 구슬이 이탈하는 등 예기치 않은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그 후 약 1년간 구슬의 크기, 미로의 너비와 깊이, 투명창의 두께 등을 0.1㎜ 단위로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하며 설계를 수정했다. 퍼즐의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가운데 있던 구슬의 출입구 위치도 모서리로 옮겼다. 당시 김 교수와 양 대표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가는 진행 과정을 깨알 같이 정리한 노트와 3D로 프린팅한 수많은 테스트 블록 더미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용자 관점에서 보기 좋으면서 쓰기 편한가를 기준으로 문제점을 개선했습니다. 외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작동이 잘 되도록 사용자 편의성을 증대시켰죠.”
업그레이드된 메이즈 큐브는 2018년 11월에 열린 ‘디자인코리아 박람회’에서 200여 명의 관람객들에게 다시 한 번 평가를 받았고, 더욱 강력해진 재미로 그들을 사로잡았다.
“한 분은 아이가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이라며 아이가 떼를 쓰면 스마트폰을 주곤 했는데 이제 메이즈 큐브를 줘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대표, 1호 상품
2019년 1월 김관명 교수와 (주)아이디공간을 공동 설립한 양지현 대표는 본격적으로 양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개발 과정의 90%를 완료했으니 큰 산은 넘은 셈이다. 이제 금형 제작과 양산화를 위한 생산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 이를 위해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도 계획하고 있다. 빠르면 7~8월 중 시장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아마존코리아와 입점 미팅을 가졌고, 본격적으로 양산을 계획하면서 전휘수 학생(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14)도 팀원으로 영입했다.
“메이즈 큐브가 수업 시간에 탄생한 만큼 앞으로 UNIST와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을 대표하는 제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후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겠죠?”
시장 출시 카운트다운에 들어선 메이즈 큐브. 과연 소비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 자못 기대가 크다.
좋은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돼야
[Mini Interview] 김관명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서 매년 좋은 아이디어들이 도출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졸업 전시회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제품화돼서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전문적인 지도를 받으면 제품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높일 수 있습니다.
제가 교수로서 꿈꾸는 모델도 수업과 연구를 통해 개발된 아이디어가 시장에 출시돼 실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상용화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은데, 메이즈 큐브가 그 첫 사례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Designed by UNIST, Made in UNIST의 성공 모델이 많이 나올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