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끝날 무렵 일본의 한 연구소는 21세기를 ‘소재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면서 생활의 혁신이 실현될 거라는 말이다. 이처럼 소재가 중요해지면서 더욱 주목받는 과학자가 있다. 백종범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가 그 주인공. 첨단 나노 소재인 그래핀을 낮은 비용에 친환경적으로 양산하는 기술과 전기분해 수소 발생 촉매 및 연료전지 산소 환원 촉매를 개발한 백 교수는 2018~2019년 연속 ‘세계 1% 과학자’에 선정됐다. 우리나라 소재의 미래를 짊어진 백 교수를 만나본다.
소 풀 먹이던 어린 시절의 추억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73년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TV를 처음 본 건(물론 흑백) 5학년 때였죠.”
경북 고령군 쌍림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백 교수는 일곱 살 때부터 집에서 기르던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였다. 백열전구가 켜져 밤에도 방이 환해졌을 때 눈이 휘둥그레졌고, TV를 처음 봤을 땐 사람이 그 안에 들어있는 줄 알았다. 백 교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농사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공부는 다섯 살 위 형의 몫이라며.
그런데 나라가 조금씩 발전하면서 중학생 때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공고에 가서 취직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대학생이 된 형이 “종범이는 공부가 적성”이라며 인문고에 가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했고, 백 교수는 대구 계성고에 입학해 당시 수예 공장에 다니던 막내 누나와 함께 자취하며 학교에 다녔다. 결국 중학생 때까지는 인생 계획에 없던 대학생(경북대 응용화학과)이 됐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서울 명문대에 못 간 게 아쉬웠다. 쌍림면의 중학교에 다닐 때 영어 전공 교사가 없어 사실상 고등학교에 가서야 영어를 배우는 바람에 수학과 과학은 거의 만점을 받았음에도 영어 성적이 안 좋았다. 대학에 다니며 영어를 따로 공부했고 2학년 때 학력고사(오늘날 수능에 해당)를 다시 봐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 원서를 내려고 하니 시간과 돈(1, 2학년을 다시 다녀야 하므로)이 아까웠다. 게다가 ‘내가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명문대에 대한 선망도 시들해졌다. 결국 백 교수는 입대를 택했고 제대 뒤 열심히 공부해서 1991년 고분자공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세계 1% 과학자’의 영예를 얻기까지
대학원 연구 주제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합성이었다. 당시는 실험실 환경이 열악해 백 교수는 여러 실험 장치를 손수 만드는 등 고생도 많았다. 다행히 연구결과가 좋아 SCI 학술지에 논문을 낼 수 있었다.
백 교수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졸업과 함께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신입사원 연수를 받으며 ‘이건 내 체질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그만두고 나라에서 장학금을 받는 ‘국비유학’을 준비했다.
“분야별로 한 명씩 뽑았는데 재수 끝에 화학 분야에 선정됐죠. 당시 물리 분야에 뽑힌 사람이 하버드대 김필립 교수입니다.”
백 교수는 고분자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미국 에크론대에 들어가 전투기나 우주선에 쓰이는 내구성과 내화성이 뛰어난 특수 플라스틱을 합성하는 연구를 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미국공군연구소에 취직해 4년 동안 연구를 이어갔다.
2003년 충북대 공업화학과에 부임한 백 교수는 2008년 UNIST 초대 총장인 조무제 박사의 영입제안을 받고 한동안 고민하다 UNIST로 옮겨 2009년 부임했다. 백 교수는 일요일도 없이 일했고 10년이 지난 지금 탁월한 연구실적으로 ‘세계 1% 과학자’의 영예를 얻기에 이르렀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대표적인 연구 두 가지를 소개한다.
볼밀로 흑연 분쇄하는 아이디어 떠올려
2010년 영국 맨체스터대의 물리학자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그래핀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들은 스카치테이프를 흑연에 붙였다 떼는 간단한 방법으로 흑연의 한 층, 즉 그래핀을 분리해 화제가 됐다. 그래핀은 물리적·전기적 특성이 뛰어나 쓰임새가 많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대량으로 만드는 게 문제였다. 스카치테이프 방법은 연구용으로 소량만 얻을 때 쓸 수 있었다. 결국 산화환원 같은 화학적 방법을 써야 하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그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많이 사용됐다.
UNIST에 부임한 백 교수는 오랜 합성 경험을 살려 그래핀 양산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을 잘못 들여놓았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많은 연구자가 고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루는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그래핀에 대해 고민하던 백 교수는 문득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실험실에서 혼합물을 섞을 때 쓰는 볼밀(ball-mill machine)에 흑연과 드라이아이스(고체 상태의 이산화탄소)을 넣고 기계적인 힘으로 분쇄해 그래핀을 얻는 방법이다. 볼, 즉 지름 5㎜인 쇠구슬이 회전하며(자전) 이동하는(공전) 이중의 힘으로 흑연의 층을 떼어낼 수 있지 않을까.
백 교수는 바로 학생에게 전화해 실험 방법을 알려줬고 그의 예상대로 둘레가 카르복시화된(이산화탄소와 반응해) 그래핀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은 2012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려 화제가 됐다.
백 교수가 관심을 가진 또 다른 분야는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연구다. 수소는 청정원료를 상징하지만 문제는 백금이라는 고가의 귀금속 촉매가 쓰여 양산에 큰 걸림돌이 되고 반응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많아 그다지 친환경이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청정원료가 될 수 있다.
많은 과학자가 백금 대신 다른 금속을 쓴 촉매를 연구하고 있지만 별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백 교수는 본능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길이 있다고 느꼈다. 단순히 금속을 나노입자로 만들어 표면적을 넓히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 그래핀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백 교수는 2011년 어느 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탄소원자로만 이뤄진 그래핀 대신 탄소원자와 질소원자가 2:1의 비율로 분포한 그래핀 구조 물질을 만들면 질소원자 6개가 둘러싼 공간이 생기고 여기에 금속을 넣으면 안정되면서도 효율은 뛰어난 촉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구현하는 3개월 동안 백 교수는 흥분과 기대에 잠을 설쳤다. 다행히 예상한 구조대로 물질이 만들어졌고 백 교수는 이를 C2N(탄소원자와 질소원자의 비율이 2:1이므로)이라고 불렀다.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을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에 제출했지만 여러 차례 의견이 오고 간 뒤 결국은 게재가 거절됐다. 너무 혁신적인 아이디어라 기존 연구자들의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 논문은 4년 뒤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렸다.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연구 추구
백 교수는 C2N을 활용한 촉매 연구를 진행했고 가격이 백금의 4%에 불과한 루테륨을 C2N으로 안정화시킨 촉매가 기존 백금 촉매를 능가하는 활성과 안정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결과는 2017년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실리면서 큰 화제가 됐다.
한편 수소로 전기를 만드는 연료전지에도 촉매가 필요하다. 수소와 산소가 반응해 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고가의 백금촉매가 쓰인다. 백 교수팀은 이번에도 C2N을 투입하기로 했고 여러 금속으로 실험한 결과 놀랍게도 저렴한 철이 최고의 파트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의 전기분해와 연료전지 반응 모두에서 백금 촉매의 대안을 찾은 것이다.
UNIST에 온 지 어느덧 10년이 지난 백 교수는 앞으로 상용화 연구에 좀 더 집중할 계획이다. 실험실 규모에서 뛰어난 물성을 지닌 소재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도 대량 생산에 적용할 수 없으면 사람들의 삶에 별 도움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가 개발한 소재들이 최근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백 교수는 ‘그래핀엣지’라는 회사를 설립해 볼밀 분쇄법으로 그래핀을 양산해 몇몇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내친김에 백 교수는 지난해 ‘루시투앤’이라는 회사도 설립해 전극에 C2N 기반 루테늄 촉매가 코팅된 물 전기분해 장치를 만들었다.
현재 백 교수는 박사 후 연구원과 대학원생 등 20여 명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공휴일에도 출근하는 지도교수 때문에 학생들이 고생은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연구하는 게 너무 좋아서 매일 나오는 거지만 학생들에게는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되도록 실험실에 들르지도 않지요.(웃음)”
사실 백 교수는 자유방임주의자다. 학생들이 실험실에 언제 나오고 들어가는지도 신경 쓰지 않고 실험을 빨리하라고 채근하지도 않는다. 이는 일곱 살 때 소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찌감치 깨달은 이치다.
“앞에서 소를 이끌면 잘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따라가면 알아서 잘 가죠. 가끔 방향만 잡아주면 됩니다.”
소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서 뭣하랴. 시켜서 억지로 일하면 며칠은 효과가 있겠지만 수년이 걸리는 연구에서는 십중팔구 역효과다. 교수의 조바심에 학생들이 심리적 압박을 느끼면 떠오를 아이디어도 숨어버릴 것이다. 백 교수는 학생들이 능동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삶을 살려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결국 그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백 교수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그런 기준으로 갈 길을 선택한 것처럼.
글_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며 <강석기의 과학카페>,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를 저술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