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접목한 헬스케어 시장이 날개를 달고 부상하고 있다. 그만큼 혁신기술로 무장한 많은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겁 없이 도전장을 내민 타이로스코프의 박재민 대표. 신생 스타트업이지만 의료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포부가 대단하다.
“사업하느라 바빠!”
‘10년 후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라는 고등학교 졸업앨범 속 질문에 박재민 대표(산업공학과 석사과정 18)가 호기롭게 한 대답이다. 그리고 올해가 바로 그 10년 후.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미래를 다녀 온 것일까. 박재민 대표의 상상이 현실이 됐다.
지난 4월 ‘타이로스코프’라는 회사를 세우고 첫 제품 출시를 위해 24시간이 모자란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대답을 십대 소년의 맹랑한 발언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기업가가 되겠다는 것은 박 대표의 오랜 바람이었다.
“어린 시절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저도 기업가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렇다고 막연히 꿈만 꾸었던 것은 아니다. 학부에서 경영학과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한 박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창업경진대회나 데이터 분석경진대회 등에 참여하며 차근차근 기업가가 될 준비를 해왔다.
운명적 만남 이후 창업 급물살
초중고대학을 같이 나온 22년 지기 친구 탁윤원 개발자, 축구 동아리에서 만난 안준 COO와 드디어 창업을 결심한 박재민 대표는 본격적으로 사업 아이템 발굴에 나섰다. 그러다 석사 논문 주제인 스마트 항만 관제시스템을 사업 모델로 발전시키기로 하고 한 변리사사무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박 대표는 좋은 소식과 아쉬운 소식을 한꺼번에 접했다. 먼저 아쉬운 소식은 이미 해양경찰청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은 소식이다. 그것은 현재 타이로스코프의 CTO인 분당서울대병원 문재훈 교수가 파트너가 될 기술창업기업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문재훈 교수님께서는 2018년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생체신호를 분석해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창업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본업과 병행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아 기술이전 할 기업을 물색하고 계셨죠.”
울산대학병원과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주관한 2018년 창업경진대회에서 헬스케어 관련 제품으로 2등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박 대표는 일찍이 헬스케어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흔쾌히 문재훈 교수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바로 마음을 정했다.
“만나기 전에 교수님 논문을 찾아 읽고 시장조사도 했지만 만났을 때 느낌이 너무 좋아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때는 논리적인 분석보다 순간적인 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바로 사업자의 ‘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감을 믿고 직진 하기로 한 박 대표는 만남을 가진 지 한 달도 채 안 돼 타이로스코프 를 설립했다. 그야말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갑상선 환자들에게 종합 솔루션 제공
타이로스코프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생체신호를 분석,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예측한 후 매일매일 위험도를 모니터링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 단위로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복약 관리 등 질환관리 다이어리, 데이터 프로파일 리포트, 회원들 간 정보 공유 및 친목을 도모하는 커뮤니티 기능까지 담아 갑상선 기능 이상 환자들을 위한 종합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 복약 중인 갑상선 기능 이상 환자는 세계 인구의 1.5%이며, 그 수는 1.15억 명 정도 됩니다. 환자들의 90% 이상은 평생 질환을 관리해야 하는 만성환자들인데 항진증 약을 먹다보면 저하증이 나타나고, 저하증 약을 먹다보면 항진증이 오는 등 복약 부작용이 있어 늘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삽니다. 그래서 부작용이나 재발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는데 현재는 내원해 혈액검사를 하는 수밖에 없어 불편이 크죠.”
본격적으로 ‘갑상선 기능 이상 스마트 케어 시스템’이라는 창업 아이템에 대해 묻자, 박재민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갑상선 기능 이상 질환의 특징과 환자들의 문제, 그래서 환자들에게 본 제품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숨도 쉬지 않고 한 호흡에 설명했다.
의료계 종사자 못지않은 탄탄한 전문지식으로 신뢰감을 주는 한편, 자칫 설명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실제 질병을 앓고 있는 축구선수 호나우두와 영화배우 이연걸의 사례를 들어 흥미를 잃지 않게 했다. 한두 번 프레젠테이션을 한 실력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사업 초기만 해도 투자회사나 창업지원기관들로부터 그리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는 박 대표.
“그동안 다양한 교내외 활동을 통해 발표 실력을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해 투자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 같아요. 명함에 대표 직함을 기입했다고 해서 저절로 대표 자질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투자회사나 창업지원기관에 지원하는 족족 심사에서 떨어지자 처음에는 꽤나 충격이 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세상이 아직 우리를 못 알아보는 것’이라며 팀원들과 재기를 노렸다.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 서비스 방향, 경쟁사 분석 등 어느 부분이 부족했던 것인지 점검에 점검을 거듭하며 사업기획서를 보완했다. 그 과정에서 팀원들과 토론하는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갑상선 질환 환자들의 온라인 카페를 찾아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환자들의 고충을 직접 들으니 그들의 니즈를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하루빨리 제품을 출시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내년 1월 글로벌 시장 동시 출격
지난 7월 그동안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울산이 게놈서비스 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되면서 타이로스코프가 규제특구 사업자로 지정돼 ‘복합만성질환 다중진단 바이오마커 발굴’ R&D 과제를 수행하게 된 것.
이를 시작으로 기쁜 소식이 연달았다. 8월 초에 기술보증기금의 벤처기업인증을 받았는데 3개월차 스타트업 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가장 큰 지원은 UNIST로부터 창업공간을 제공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박재민 대표.
“우선 팀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사무공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렴한 비용에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돼 창업 부담을 덜었습니다. 그리고 투자, 노무, 세무 등 전문 분야별 멘토링도 받았습니다. 이러한 지원들은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회사 설립 후 하루에 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는 박 대표는 현재 기술이전과 특허 관련 업무를 마무리 짓는 한편, 내년 1월 정식 론칭을 위해 최종 앱 디자인을 결정하고 있는 중이다. 제품은 국내는 물론 일본,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 동시에 출시할 예정이다. 그 후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도 개발하고, 다른 만성질환으로 시장을 확대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박 대표에게 10년 전 고등학교 졸업앨범 속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박 대표의 대답은 10년 전과 동일했다.
“계속 사업을 하느라 바쁘겠죠(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