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면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크리스토퍼 로빈스(Christopher Lovins) 기초과정부 교수는 글로벌 캠퍼스를 지향하는 UNIST에서도 가장 ‘글로벌한’ 인물일 것이다. 지난해 <정조대왕, 초기 근대 조선의 계몽 군주>라는 책(영문) 을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던 로빈스 교수는 어떻게 한국사를 공부하게 됐고 UNIST까지 오게 됐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그에게 한국 문화와 역사, 그리고 UNIST의 애정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초과정부에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전 한국사 전공이고 한국분은 서양사 전공이죠. 역사학도였지만 저도 한국사를 연구하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죠(하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를 졸업하고 잉글랜드 역사를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영국 런던킹스칼리지로 유학한 로빈스 교수는 그러나 얼마 못 가 대학원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익숙함이 식상함으로 바뀌었던 것. 이런 와중에 유학 온 한국 학생 세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서 독특한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고 배우고 싶어졌다. 결국 기분전환도 할 겸 3개월짜리 한국어 초급과정을 듣기 위해 한국행에 올랐다.
우연으로 만난 한국의 왕, 정조
수업을 들으며 점차 한국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된 로빈스 교수는 고려대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한국학 석사과정이 있다는 걸 알고 신청해 서양사에서 동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 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아시아학과에서 한국사 박사과정을 이어갔다. 도대체 한국 역사의 어떤 부분이 그의 관심을 끌었을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야기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중국 같은 강대국 옆에서 조선이 흡수되지 않고 독립된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죠.”
사실 로빈스 교수는 조선 초기의 역사를 연구하고 싶었지만 지도 교수의 제안에 따라 18세기와 19세기 조선 후기를 연구하게 됐다. 이때 우연히 본 논문의 첫 구절이 영화 ‘역린’ 앞부분에도 나오는, 막 왕위에 오른 정조가 선언한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문구다. 이때부터 정조에 ‘꽂힌’ 그는 연구에 몰두했고 정조가 프랑스 루이 14세에 버금가는 왕임을 깨달았다. 지난해 출간된, 계몽 군주로서 정조를 조명한 책 <정조대왕>은 10여년에 걸친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정조는 조선 왕 가운데 가장 능수능란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해서 조선 사회를 혁신하려고 했지요.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나 뜻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정조는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재조명됐다. 특히 드라마 ‘이산’을 계기로 일반인의 관심도 높아졌다. 로빈스 교수 자신도 이런 우연이 무척 흥미롭다.
역사를 배우면 세상 보는 눈 넓어져
“2014년 학위를 받고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던 중 우연히 UNIST에서 한국사 교수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습니다. 한국과는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UNIST에 부임해 과학도와 공학도에게 교양과목으로 한국사를 가르친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학생들은 대체로 역사를 지루한 암기과목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외우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의 강의를 흥미로워했다. UNIST의 외국 유학생들도 호응이 크다. 평소 한국에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라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로빈스 교수는 이공계 학생들이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하면 “주체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의 생각과 정신을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하고 싶어한다는 걸 역사를 배움으로써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강의시간에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를 보여주며 학생들의 흥미를 유도하기도 한다. 물론 블록버스터일수록 허구가 많지만 모든 역사 자료 역시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 자신의 책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로빈스 교수는 최근 조선 후기 노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정조는 노비제도를 없애려고 했지만 과로로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노비를 들여다보니 정말 특이하더군요.”
보통 노비, 즉 노예는 죄인이나 외국에서 잡아 온 포로, 정복한 땅의 원주민 등 다른 민족이 차지한다. 그런데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조선의 노비는 같은 인종에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 아닌가. 그럼에도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 비율과 비슷하다.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은 노예가 각각 3%, 1%에 불과했다.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 조상들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노비제도가 이렇게 예외적인 사례일 줄은 생각조차 못 하지 않았을까. 벌써부터 로빈스 교수가 조선의 노비제도를 어떻게 해석해낼지 궁금해진다.
이제 두 번째 한국 생활도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들었다. 로빈스 교수는 틈틈이 국내 곳곳의 역사 유적을 방문하고 국내외 한국사학자들과도 교류를 이어나간다. 비록 UNIST의 유일한 한국사학자이지만 다양한 네트워크가 있어 연구를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동안 UNIST가 글로벌화를 지향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이제 꽤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캠퍼스를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많은 외국인 교수들과 학생들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단다. 이 순간 로빈스 교수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가 준비하고 있는 한국의 또 다른 이야기가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