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하루를 마치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나요? 캠퍼스에서 별을 헤아리는 낭만을 드립니다!”
UNIST의 유일한 천체관측 동아리 아스트랄(ASTRAL)이 2020년 신입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입시를 준비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신입생들에게 UNIST 스타일의 낭만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한다. ‘별빛처럼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라는 아스트랄은 과연 어떤 동아리일까? 별을 품은 아스트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별로 이루어져 ASTRAL!
“와, 벌써 금성이 나왔네. 저기 저건 시리우스랑 카펠라지?”
“아직 2월이라 겨울철 별자리가 더 많이 보이네.”
봄바람의 훈기가 느껴지는 2월의 어느 날, 해가 서산으로 막 넘어간 시간. 학생회관 옥상에서는 아스트랄 회원들이 모여 천체 망원경을 설치하느라 웅성웅성 분주하다. 육안으로 보이는 별들을 보며 주고 받는 대화도 천체관측 동아리답게 ‘별’스럽다. 아직 방학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꽤 많은 회원들이 모였다. 이번 촬영을 위해 멀리 인천을 비롯해, 청주, 부산, 포항 등 전국 각지에서 열 일을 제치고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한다.
“아직은 개강 전이라 구체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있어요. 간간이 기숙사에 남아있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장노출로 여러 성운을 담아보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스트랄 동아리장인 이승석 학생(기초과정부 19)의 설명이다. ASTRAL은 글자 그대로 ‘별의’, ‘별로 이루어진’, ‘천체의’ 라는 뜻이다. 2009년 UNIST 개교 첫해에 만들어진 동아리라고 하니 가장 오래된 동아리 중 하나다. 그동안 활동했던 선배들까지 누적하면 아스트랄의 회원은 150여 명에 이른다. 그중 30여 명이 현재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정기모임을 갖는데 모임마다 평균 15~20명 정도씩은 모일 정도로 동아리 참여율이 높다.
학술부와 관측부로 나누어 활동 중인데 날씨가 좋은 날은 관측부 주도의 천체관측을 하고 흐린 날은 학술부 주도의 학술 세미나가 진행된다. 세미나는 동아리 내 행사이긴 하지만 ‘소행성 충돌과 대비책’, ‘역법’, ‘블랙홀 확인 방법’ 등 미리 주제를 정해 놓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꽤 알찬 편이다. 그 외에도 소규모로 조를 짜서 별자리와 성운의 위치를 빠르게 확인하는 연습을 하거나 천문학 스터디를 진행하기도 한다. 올해에는 한동안 뜸했던 타 대학 천문 동아리 연합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대학의 낭만을 지키는 동아리
아스트랄은 학술 동아리답게 천체관측과 세미나가 주요 활동이지만 회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친목’ 활동이다. 성적과 경쟁의 중압감에서 잠시 벗어나 회원들끼리 친목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동아리 활동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끈끈한 유대감만큼은 어떤 동아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스트랄 회원들의 한결같은 자부심이다. 무엇보다 UNIST 학과 중에 천문 관련 학과가 없기 때문에 성적에서도 자유롭다. 그래서 신입생 대상 회원모집 기간에도 신청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동아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스트랄이 학술 동아리로 분류되긴 하지만 회원들끼리는 학술의 ‘술’이 한자로 ‘酒’자를 쓰는 술이라고 농담을 해요. UNIST 학생들이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동아리에서까지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즐길 수 있는 동아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입생들이 들어올 텐데 새내기 친구들에게도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특히 UNIST의 첫 1년을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 채워줄 자신이 있어요.”
별을 보는 일이 주요 활동이다 보니 대부분의 모임이 밤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겪는 에피소드도 남다른데 회원들이 털어놓는 이야기 속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하루는 회원들끼리 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데 하늘에 유난히 별이 많이 보였어요. 갑자기 한 친구가 길바닥에 드러눕더라고요. 그러자 너도나도 길바닥에 드러누워 한참 동안 별구경을 한 적이 있어요.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진짜 낭만적이잖아요.”
요즘 사람들치고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앞만 보고 달려도 빠듯한 세상이다. 하지만 아스트랄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가끔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라고 권한다. 칠흑처럼 시커먼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것들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박광현 학생(경영학부 19)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우진 학생(신소재공학부 19)도 아스트랄에서 별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요즘 사람들은 끊임없이 달려야 뭔가를 얻는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가만히 선 채 하늘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뭐 하냐’고 묻곤 합니다.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그 멈춰 있는 평화가 참 좋습니다. 아스트랄 회원들이라면 다 공감할 겁니다.”
보통은 학생회관 테라스나 옥상, 공학관 뒤쪽의 공터 등에서 천체관측 활동을 하지만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면 캠퍼스를 벗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동아리방 한켠에는 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카트가 한 대 놓여 있다. 여기에 커다란 천체 망원경을 싣고 고개 넘어 너른 논밭으로 나간다. 논두렁에 텐트를 친 채 망원경을 설치하고 별이 뜰때까지 기다리곤 한다. 대학의 낭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별처럼 반짝이는 사람들을 만나는 동아리
“별 보는 것을 좋아해 고등학교 때도 천체 동아리 활동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스트랄에 가입했어요. 천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동아리에 촬영 장비가 있으니까 도움이 됩니다.”
한주환 학생(신소재공학부 19)의 말처럼 아스트랄은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동아리라 입학과 동시에 신청을 결정한 회원들이 대부분이다. 최종민 학생(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18)도 다른 동아리들과 비교하며 좌고우면 안 하고 아스트랄로 직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별 보러 들어왔던 회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보러 오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별처럼 빛나는 친구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집이 인천입니다.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처음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스트랄 덕분에 대학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처럼 낯선 환경에 방황하는 신입생들이 많을 텐데 그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동아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동아리장 이승석 학생은 ‘세상 편한 동아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다행히 회원들도 그렇게 여기는 듯하다. 시험 기간에는 대부분 도서관으로 가기 때문에 밤새 불이 켜져 있는 동아리 방이 많지 않다는데 아스트랄은 예외이다. 많은 회원들이 잠옷 바람으로 와서 밤새워 공부하고 꾀죄죄한 얼굴로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곤 한다. 그만큼 격의 없는 친구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동아리장이긴 하지만 나오지 못하는 회원들에게 활동을 강요하거나 나오라고 재촉하고 싶지는 않아요. 활동 여부는 스스로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현재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 회원들이 지금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동아리장 이승석 학생의 답변이다. ‘무언가 부족한 것을 들추어 개선하고 발전시킨다’는 것보다 ‘지금의 이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공감하는 동아리 후배들이 많이 들어와 이 분위기를 오래도록 이어가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