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가 문을 열기도 전에 부임해 지금까지 UNIST의 눈부신 성장 과정을 지켜본 로버트 미첼(Robert Mitchell) 생명과학부 교수. 그가 한국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이 1998년. 미국에 잠시 머문 3년이라는 시간을 제외해도 20년이 다 되어 가는 세월이다. 웃는 모습이 참 따뜻한 미국인 미생물학자 로버트 미첼 교수. 그가 전해주는 한국 사랑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
처음 시작된 한국과의 소중한 인연
“UNIST에 온 지도 어느새 12년이 되었네요. 너무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일리노이대에 다닐 때 아시아 친구들이 많았고 저도 모르게 아시아 문화에 끌리더군요. 중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박테리아에 매료돼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공부하던 학부생 로버트 미첼은 어느 날 한인 교회에 갔고 그곳에서 어학연수를 온 한국 학생들과 사귀면서 특히 한국에 호감을 갖게 됐다. 그 당시에는 한국에 가서 살 생각까지는 없었다. 졸업 뒤 대학원 실험실에서 연구보조원 생활을 하며 미래를 모색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한국의 신생 대학인 GIST에서 대학원생을 모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생활을 체험하며 학위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지원했다. 물론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위험한 화합물을 감지하면 빛을 내는 박테리아 센서를 만드는 연구를 했습니다.”
석사와 박사과정을 합쳐 6년 동안 박테리아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던 로버트 미첼 교수는 단 한 번 곁눈질을 했다. 지난 2000년 교회에서 만나 교제한 여성과 결혼한 것. 박테리아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은 아내와 세 자녀 뿐이다.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는 동안에도 한국 생활이 그립더군요.”
하버드대에서 인체 감염 박테리아를 연구한 로버트 미첼 교수는 결국 3년 뒤 한국의 KIST로 와서 바이오연료를 연구했다. 박테리아가 수소나 부틸산 같은 물질을 많이 만들도록 대사 유전자 회로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그는 박테리아에 관해서라면 뭐든 해보고 싶었다. 그러는 중에 2008년 UNIST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다.
“UNIST가 새로 개교한 학교라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지만 제가 석사를 시작할 때 GIST도 생긴 지 얼마 안 된 대학이었죠. 게다가 제 은사인 구만복 교수님께서 강력하게 추천하셨고요.”
그의 사랑 미생물, 포식성 박테리아
이렇게 해서 로버트 미첼 교수는 UNIST에 발을 내디뎠고, 지난 12년 동안 UNIST에서 포식성 박테리아 연구에 매진했다. 포식성 박테리아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박테리아를 공격해 세포 안으로 들어간 뒤 내용물을 먹이삼아 증식하는 작은 박테리아다.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가 연상되는 모습이지만 세포로 이뤄진 엄연한 박테리아다.
“포식성 박테리아는 오늘날 심각한 문제인 항생제 내성 슈퍼박테리아를 제압할 수 있는 유력한 무기입니다. 다만 아직은 편견을 극복하지 못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요.”
혹시라도 포식성 박테리아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체 세포를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그는 이미 안전하다는 연구결과가 여럿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토양이나 하천, 심지어 우리 장에도 이미 포식성 박테리아가 존재한다. 사실 그가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할 때만 해도 주위 사람들은 그런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과학자들조차도 암이나 당뇨병 연구가 중요하지 미생물 연구는 한가한 일이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체가 장내미생물과 공생관계라는 관점이 부상하고 알레르기 등 많은 질병이 박테리아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생물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그로서는 반가운 현상이다.
활발한 연구와 함께 로버트 미첼 교수는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에서 국제협력간사로 활약하고 있다. UNIST가 지향하는 글로벌 캠퍼스에 꽤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는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첫째는 미국의 대학을 다니는 공학도, 둘째는 미국의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생물학에 관심이 많다. 한국에 있는 막내는 미술에 소질이 있어서 그의 연구실에도 ‘작품’이 한 점 걸려 있다.
“전 아이들이 자기 열정을 알아내어 그것을 추구하길 바랍니다. 직업도 자신이 열정을 품고 있는 일을 해야 그 일이 즐겁고 행복할 테니까요. 물론 저의 열정은 오로지 박테리아죠!”
한국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돼
울산에서 그의 생활은 어떠할까? 로버트 미첼 교수의 입맛은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다. UNIST가 자리한 언양읍의 명물 언양불고기는 물론이고 콩비지 찌개도 그가 무척 좋아하는 음식. 비빕밥을 잘한다는 단골 맛집을 살짝 알려주기도 한다. 주변의 자연이 아름다운 것도 UNIST에서의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큰 요인이다. 산에 둘러싸인 UNIST 캠퍼스에서 사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지켜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주말에는 울산의 이곳저곳과 주변 지역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그는 울산대공원과 대왕암공원을 좋아한다.
“울산대공원은 워낙 넓고 잘 꾸며져 있어 볼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이맘때는 장미원이 볼만하지요. 그리고 대왕암 가는 길을 걸으면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무척 상쾌합니다.”
울산 생활을 얘기하는 그의 얼굴에서 마치 토박이가 자기 고향을 자랑하는 것 같은 표정이 보인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 UNIST에 머물며 박테리아 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연구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박테리아를 아름다운 존재라고 말하며 그 열정을 쫓아 즐겁게 살아가는 로버트 미첼 교수. 유독 그의 한국 사랑과 인연이 돋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