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우주국의 인공위성 SMOS를 사랑하는 연구원, 게임까지 프랑스어로 하는 연구원, 실제 빙하를 보기 위해 쇄빙연구선에 승선한 연구원 등 별난 연구원들이 모여 있는 임정호 도시환경공학부 교수의 IRIS랩. 원격탐사 자료를 활용해 환경문제를 연구하는 IRIS랩은 인간의 시각을 담당하는 ‘홍채’라는 그 이름처럼, 오늘날 지구의 다양한 환경문제를 응시하고 있다.
우리의 푸른 별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바다에서는 태풍과 해무가, 육상에서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폭염과 가뭄이, 때로는 산불과 호우도 발생한다. 최근에는 미세먼지까지 극성이다. 지구의 극지와 육상, 해양, 그리고 대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환경문제들이 바로 임정호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IRIS랩의 연구 대상이다. 이를 한 장의 그림에 담아보면 어떨까. IRIS랩의 입구 벽면에는 이러한 생각으로 탄생한 대형 일러스트레이션이 장식돼 있다.
“이 작품은 IRIS랩의 다양한 연구주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전문 일러 작가에게 의뢰해 완성한 것입니다. 맨 앞에 인공위성과 인공지능을 다루는 연구실이 저희 IRIS랩이고요.”
마치 도슨트처럼 작품을 설명해주는 유철희 학생(도시환경공학부 석박통합과정 17). 그런데 IRIS랩을 이끌고 있는 임정호 교수 대신 그가 연구실 소개를 도맡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연구실 자율 운영의 좋은 예
“저는 IRIS랩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또한 연구실을 홍보하기 위해 저희가 추진한 것이고요. 그 외에 연구실 SNS도 운영하고 머그 같은 굿즈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마치 일반 기업체처럼 체계적으로 업무가 분장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IRIS랩에는 ‘홍보’ 담당 외에도 비품과 회계를 맡는 ‘총무’ 담당, 서버를 관리하는 ‘서버&컴퓨터’ 담당,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기념일&행사’ 담당까지 정해져 있다. 연구실 규모가 커지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원 각자의 장점을 살려 팀을 나누게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팀제가 연구원들에게서 자발적으로 생겨났으며 임정호 교수는 그저 동의만 해줬다는 사실이다. 흡사 여러 개의 자치위원회들이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구원들에게 매사에 반응적(Reactive)이기보다 상황을 주도해 나가기(Proactive)를 요구합니다.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본인이 관심 있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야죠.”
그동안 연구원들에게 대답할 기회를 양보하던 임 교수가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통과 수평적인 문화를 중시하다 보니 자유로움이 넘치지만 연구원들 스스로 체계를 세워나가고 있다. 자유로움 속에서 일사불란함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러한 태도는 임 교수가 중시하는 연구자의 자질과도 연결된다.
“자기주도성은 연구자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연구자는 스스로 자신의 연구를 찾아야 하는 사람인데 매사 교수에게 의존하면 연구자의 길을 걷기 어렵죠.”
코로나19 이후 미세먼지 농도는?
IRIS랩은 인공위성의 원격탐사 자료 및 공간 정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기법을 이용해 다양한 환경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딥러닝을 활용해 강수를 예측하거나 정지궤도위성으로 태풍의 중심을 추정하고, 가뭄과 폭염을 예측하는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강유진 연구원(도시환경공학부 석박통합과정 18)은 “일기예보에서만 봤던 위성 자료 및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랩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국의 인공위성 사이트에 지속적으로 접속하다 보니 해외 유해 사이트에 접속하는 줄 알고 보안팀으로부터 접속을 차단당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원격탐사 자료를 활용하면 연구실에 앉아서도 다양한 지역의 환경문제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중국 동부지역의 미세먼지 농도 변화를 분석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미세먼지 예보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중국 공장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는 중국발 미세먼지의 원흉으로 지적됐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창궐로 공장 가동이 멈춘 중국 동부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를 확인하고자 특허출원한 실시간 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실제 지난 2월 중순(코로나19 창궐 후)부터 중국 동부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확연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 관측자료에서도 2019년 초와 비교해 2020년 초의 지상 미세먼지(PM10, PM2.5) 농도가 감소했습니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의 포스트 코로나 미세먼지 농도 변화도 분석할 계획입니다.”
IRIS랩의 연구는 이렇듯 국내 연구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격 자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임정호 교수. 현장을 경험한 연구와 그렇지 않은 연구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극의 해빙 양과 국내 폭염 및 한파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김영준 연구원(도시환경공학부 박사과정 17)은 국내 극지탐사용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승선해 한 달 간 지내기도 했다.
환경문제의 영역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연구원들마다 관심 분야는 제각각이다. 이러한 연구원들을 융합하는 것도 임 교수의 역할이다. 이에 연구원들이 자신의 분야에만 함몰되지 않고 가급적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그룹연구를 진행하며 연구원 간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자유롭지만 체계적이고, 다 다르지만 조화롭기에 연구원들은 IRIS랩을 가리켜 ‘파라다이스라’고 자랑한다.
[Mini Interview]
공간에 인공위성 및 인공지능 융합
임정호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Q. 연구실만의 전통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A. 한 해의 마지막을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면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3년 주기로 연구실원들이 다 함께 의상을 맞춰 입고 단체 사진을 남기는 전통이 있는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Q. 연구원들과 어떠한 연구실을 만들어가고 싶으신가요.
A. 딱히 특정 형태의 연구실을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연구원들에게 항상 하는 말 중 하나가 ‘행복한 연구자가 돼라’는 건데요. 연구하는 것에 늘 행복을 느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하다 보면 막히는 부분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들을 잘 극복하고 본인이 하는 연구 전체를 봤을 때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런 행복한 연구자들이 모인 연구실이라면 최고의 연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연구 분야의 향후 비전은 어떠한가요.
A. 항상 연구원들에게 ‘우리 분야의 미래는 장밋빛’이라고 말해요. 환경문제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공간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점점 더 많은 환경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성 센서 기술의 발달로 많은 국가에서 향후 지속적으로 고성능의 위성 센서들을 쏘아 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인공지능 역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구요.IRIS랩은 이 모든 것을 융합하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니 향후 비전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