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캔버스 위에 그린 사각형 하나. 그 사각형의 한 선을 지워 보니, 작은 여백이 새로이 생긴다. 예술과의 교감도, 소통도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선을 과감하게 허물고, 포옹하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전지우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예술은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아니라 모두가 바라고 꿈꾸는 따뜻한 이상향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함께 호흡하다
참 독특하다. 처음엔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기고, 자꾸 보게 되면 그 미묘한 분위기가 굉장히 신선해 끌린다. 그 안에는 묘한 흡입력과 설득력도 있다.
UNIST의 사이언스월든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첫 느낌이 그랬다. 전지우 작가는 UNIST 사이언스월든 소속의 연구원이다. 다른 연구센터에서는 생소할 수 있지만 사이언스월든에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연구원으로 함께한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현대사회의 소득불균형, 개인소외, 새대 간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사이언스월든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사이언스월든은 2016년 UNIST에 개소한 연구센터로, 인분을 분해해 에너지를 만들고 이를 사용자 모두에게 화폐로 지급하는 대안화폐 ‘똥본위화폐’를 연구하고 있다.
사이언스월든의 연구진은 과학기술을 통해 환경순환을 실현하고, 인문학과 예술을 결합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한다. 전지우 작가는 과학과 예술을 융합해 사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작품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 또한 사이언스월든의 연구에 포함된다.
코로나 시기 우리의 모습을 그리다
“조재원 교수님과 함께 기획하고 제작한 작품이 <코로나 시기의 군상>이에요. 이 작품은 조 교수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통해 제작하여 프린팅한 것인데요. 아마도 교수님께서는 지금 코로나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하신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의 군상>을 통해 그녀는 코로나 시기를 겪는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들과 각자의 위치에서 코로나에 대응하여 살아가는 모습들을 단편적으로 나열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안에는 거리 방역하는 모습,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는 모습, 비대면으로 택배를 배송하는 모습 등 현재의 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인 셈입니다. 비록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두가 함께 노력해 잘 극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녀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UNIST
UNIST 대학원생들의 졸업작품전시회를 도와주며 그 과정을 지켜본 전 작가. 그녀는 한계를 두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방식을 연구해보며, 다양한 결과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고 말한다.
“과학예술융합전공 제1회 졸업 전시는 ‘<리라밸(Research and Life Balance)>’을 타이틀로 했었어요. 무엇보다 대학원생들의 다양한 시각과 과학예술이 융합된 작품으로 드러났던 뜻 깊은 전시였지요. 학생들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과학적 사고를 접목시키고 이를 예술로 드러내며 다양한 가능성들을 제시했습니다.”
UNIST의 고유한 학업 분위기는 그녀의 창의적인 발상과 아이디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연구 과정과 결과들을 접하면서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었고, 그것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있다. 특히 학생들이 연구에 임하는 열린 사고 방식과 한계치를 설정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 깊고, 그녀에게 자극이 되는 부분이면서 본받을 점이라고 귀띔한다.
‘융합’은 각자의 다름도 인정하는 것
그렇다면 전 작가는 서로 다른 부분, 다른 것들의 ‘융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사회가 다양하고 복잡해지면서 ‘융합’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인 것 같아요. 물론, 융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많이 갈라질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융합은 색으로 비유하자면 신인상주의 작품처럼, 각각의 색과 색을 병치하고 그 색이 합쳐져서 멀리서 보면 혼합되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 이것이 이상적인 융합이 아닐까 생각해요.”
조금은 불분명해 보여도 각각의 색을 그대로 두면서도 멋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 바로 그녀가 말하는 아름다운 융합이다.
현재 전 작가는 조재원 교수와 함께 카툰북,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를 작업 중이다. 조 교수가 바라본 우리 사회의 모습들에 대한 생각을 짧은 글로 제작한 것으로 일기체 형식의 글과 함께 단순한 일러스트가 들어가는 작은 책이다.
전 작가의 꿈은 사이언스월든을 통해 여러 분야와 소통하고 이해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의 작품’으로 누군가에게 긍정적이고 선한 에너지를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