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리코(PIRECO)는 지난 2018년 8월 창업한 학생기업이다. 파이리코가 개발한 반려동물 생체인식 솔루션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표준과제로 채택됐다. 아직 국내외적으로 상용 사례가 없어 국제표준으로 정해지면 동물의 홍채와 비문*을 이용해 각 개체를 인식하고 등록하는 체계를 주도하게 된다. 국제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최소 3년 이상이 걸린다고 하니 당장의 수익만 생각했다면 신생 회사로서 도저히 도전하기 힘든 길로 접어든 것이다. 파이리코의 김태헌 대표(생명공학과 13)를 만나 창업 과정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 비문(鼻紋, Muzzle): 동물의 코 주름 무늬를 말하는 것으로, 비문은 사람의 지문과 같이 개체마다 고유한 형태로 변하지 않아 개체 식별에 쓰일 수 있다.
아이 피부 속에 칩을 넣으라고요?
“PIRECO는 ‘Pet Iris RECOgnition’의 약자로 초기 창업 아이템인 반려동물 홍채인식을 뜻합니다. 현재는 비문을 함께 활용하는 다중 생체인식으로 범위를 넓혀 개발 중에 있습니다.”
파이리코(PIRECO) 김태헌 대표는 생명공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석사과정 중 파이리코를 창업했다. 반려동물을 생체인식으로 인식하는 기술은 수요가 급성장하고 있는 분야라 여러 기업에서 시장 선점을 위해 앞다투어 기술개발에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적이 없는 기술이다.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동물병원에 첫 방문 했을 때였어요. 동물등록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서는 내장형 칩으로 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안내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피부 속에 칩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너무 컸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유댕댕’이라는 유기견 봉사단체를 만들어 활동할 정도로 동물을 좋아한 김 대표. 주기적으로 대학 인근의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해 산책, 목욕, 빗질 등으로 동물들과 교감하는 활동을 했는데 보호소에서 만난 유기견 중에 동물등록이 되어 있는 유기견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록이 되어 있었더라면 주인을 찾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던 김 대표. 그런 이유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물등록을 활성화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생체인식 솔루션이라는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후 2018년 대학원 랩의 동료 연구원 2명과 함께 ‘홍채와 비문 인식을 기반으로 반려동물 개체식별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동영상을 촬영하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인식한 홍채와 비문 데이터를 자동으로 검출해 동물의 정보를 등록·인증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지난해 12월부터 베타버전을 무료로 출시했고 현재는 서비스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국제표준 과제로 채택, 새로운 길에 도전!
그런데 김 대표가 도전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술개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이 기술이 국제표준 과제로 채택된 것. 최근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국가대표단으로 참여해 신규 표준과제를 제안하고 개발을 승인받았다. 이로써 기술의 기준점을 마련하는 주체가 된 것은 물론이고, 관련 지적재산권 확보에도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정 기술이 국제표준화가 된다는 것은 해당 기술의 정의 및 평가 방법, 활용 방법을 범국가적으로 운영되는 표준화 기구의 표준 문서에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 내용을 담은 표준 문서가 정식으로 발간되면 관련업을 운영하는 주체들은 반드시 그 기준을 따라야 한다.
다중 바이오인식 기반 반려동물 개체식별 기술이 국제표준화가 된다면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뀐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댕댕이들과 자유롭게 해외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된다’고 간명하게 설명한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해외여행입니다. 현재 국제표준으로 제정되어있는 동물등록 방식은 내장형 칩뿐입니다. 만약 다중 바이오인식 기반 반려동물 개체식별 기술이 표준화되고 각국에 관련 정책이 법안에 반영된다면 칩을 넣지 않아도 생체인식을 통해 해외여행까지도 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의 동물등록 방식은 내장형 칩과 외장형 두 가지이다. 내장형 칩은 동물병원에서 시술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강아지의 피부 속에 칩을 집어넣는 것이 마땅치 않아 외장형으로 등록하려 해도 등록절차가 간단치만은 않다. 구청에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프라인에 집중된 등록절차를 온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등록할 수 있다면 현재 50~60%에 머물러 있는 등록제 참여율이 100%에 가깝게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확신에 찬 기대이다.
회사와 함께 모두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중
사업 아이템이 국제표준 과제로 채택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은 ‘학생창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창업에 나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나 허투루 지낸 시간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회사가 성장하는 것만큼이나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다는 김태헌 대표.
“협력사들과 업무미팅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젊어서 놀랐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십니다. 실제로 어느 한 미팅에서는 본인의 아들과 제가 같은 나이라 아들과 일을 하는 기분이 든다며 신기하다는 말씀을 하신 분도 계십니다. 그럴 때마다 혹시라도 제가 진행하는 사업의 진정성이나 전문성에 의구심을 가지실까 우려가 되어 더욱 진지하게 미팅에 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오는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토로한다. 경영, 재무, 회계, 인사, 마케팅 등 넘어야할 산이 너무나 많다. 더구나 주변 지인들도 대부분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원생이라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을 얻을 기회가 많지 않은 것도 한계이다. 김 대표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만들고 있다.
“사업 초창기에는 기술의 정확도만을 확보하기 위해 생체인식 전용 장치를 개발하고 유통하는 사업모델을 구체화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현장에 종사하는 이해관계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업에서 기술개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니즈분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결코 적지 않은 노력을 들였던 초창기 사업 아이템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사람들이 쓰기 어렵거나 필요로 하지 않으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며 학생 창업가들에게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 학교의 특성상, 기술 창업을 꿈꾸는 학생 창업가가 많습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기술개발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정하기 이전에 꼭 시장의 반응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생 창업의 이점도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의 인프라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죠. 학교라는 거대한 인프라에서 팀원을 모집하고, 교수님들에게 자문을 얻고, 창업팀을 통해 다양한 투자자와 현업 종사자들과의 네트워킹이 가능합니다. 이건 모두 우리가 학생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직은 성공을 말하기에는 이른 시기이다. 하지만 회사를 더욱 성장시켜 언젠가 성공의 비결을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 역시 학생 창업가로서 학교로부터 받은 수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얻는 매 순간의 경험들이 저를 계속 성장시키고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값진 경험들이 더 나은 목표를 그릴 수 있게 해줍니다.”
김태헌 대표는 현재 두 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생체인식으로 동물등록을 시키고 해외여행을 하게 될 때까지 쉼 없이 뛰어다닐 생각이다. 그리고 모든 반려인들이 반려동물을 등록하고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