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신기하기만 한 마술도 알고 보면 과학의 영역이다. 과학의 원리나 첨단 소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학도들이 마술에 매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조커의 회원들은 과학도들이 마술에서 진짜 배워야 하는 것은 일반적인 통념을 비트는 사고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자, 카드 한 장을 고르십시오.”
실례를 무릅쓰고 마술 동아리 ‘조커(JOKER)’의 김영준 회장(화학과 19)에게 다짜고짜 마술을 보여 달라고 청하자,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테이블 위에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펼쳤다. 그러자 “우와”하며 일동 박수. 아무리 작은 공연이라도 관람 전 성의를 담은 박수는 관객의 기본 에티켓이다. 사실 이러한 리액션도 마술 공연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카드 한 장을 선택하자 두세 번 잘 섞더니 “이 카드는 아니죠?”라며 맨 윗 장의 카드를 들춰 보여줬다. 엉뚱한 카드에 놀라 표정관리부터 했다. 혹시 이대로 ‘실패각’인 것인가. 걱정이 밀려오는 순간 카드 위에 마음대로 신호를 주란다. 손으로 ‘딱’ 소리를 내니 “에잇, 너무 약하네요. 다시 한 번 주세요”라며 무안을 준다.
이번엔 더 크게 소리를 내자 신호를 잘 받았다며 다시 맨 윗 장의 카드를 들춰 보여줬다. 그러자 단지 카드 위에 신호를 줬을 뿐인데 맨 윗 장의 카드가 처음에 뽑은 ‘크로바 9’로 감쪽같이 바뀌어 있었다.
“우와”하며 다시 일동 박수. 이때의 놀라움은 ‘찐’ 리액션이다. 도대체 언제 카드가 바뀐 것일까. 분명히 카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간단한 마술이지만 신기함이 가시지 않아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하자, 4개의 기술이 사용된 마술이라며 초보자에게는 무리라고 일축한다.
마술은 단기간에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타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가 되려면 2년 정도는 연습해야 하거든요. 한 손으로 카드를 가르고 섞는 기본 기술도 4~5일 정도 연습해야 합니다.”
호기심을 넘어 탐구의 대상으로
지난 2011년 마술의 재미에 푹 빠진 이들이 즐기기만 할 게 아니라 마술의 세계를 함께 탐구하자며 설립한 마술 동아리 조커. ‘조커’라는 동아리명은 마술의 가장 기본인 카드 마술에서 트리거로 사용되는 조커 카드에서 따온 것이다. 대부분은 마술을 보고 신기하다며 그때만 잠시 놀라고 마는데 기어코 그 원리를 파헤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조커의 회원들이다. 그래서 그 어떤 학술·연구 동아리 못지않게 탐구심이 대단하다.
성격상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한다는 정세영 학생(전기전자공학과 19)은 “혼자 마술의 원리를 연구하다가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기 위해 조커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장영웅 학생(기초과정부 20)은 “적은 손놀림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으로 다양하게 변주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또한 초등학교 장기자랑 때부터 마술을 선보였다는 이재우 학생(기초과정부 20)은 “고대 이집트 벽화에 기록돼 있을 정도로 마술의 역사는 깊다”며 “그 역사만큼 마술의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강조했다.
마술도 카드 마술, 동전 마술, CD 마술, 공 마술, 무대 마술 등 종류가 다양하다. 회원마다 관심 분야는 다르기 때문에 각자 흥미를 갖는 분야를 자율적으로 연습하거나, 1주일에 1~2회씩 정기 교육을 실시하며 마술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대개 마술 관련 도서를 참고하는데 마술은 실전이 중요하기에 글로만 익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마치 마법서를 해독하듯 책의 내용을 따라해 보며 직접 노하우를 깨우쳐야 한다. 그러다 먼저 기술을 터득한 회원이 있으면 다른 회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하지만 다 함께 배워도 한 시간 만에 기술을 익히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며칠이 꼬박 걸리는 경우도 있다. 손이 크거나 손기술이 좋은 사람이 좀 더 유리한 편이다.
서형욱 학생(기초과정부 20)은 “초보자에게는 진입장벽이 좀 높은 편”이라며 “첫 기술을 배우는 데 3~4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간혹 흥미를 잃는 경우도 있는데, 그 보완책으로 손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타로카드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줌(Zoom)을 활용해 타로카드 교육만 실시하고 있다는 김영준 회장. 언택트로는 마술 기술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마술 교육을 진행할 경우 온라인 특성상 한 방향으로만 보게 되므로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쳐주는 사람 모두 힘든 작업이 됩니다. 다만, 마술을 배우고자 하는 회원이 있으면 잘 구성되어 있는 마술 강의 동영상을 엄선해 추천해주고 있습니다.”
‘즐거운 의심’ 속에 펼쳐지는 놀라움
조커 회원들이 이렇게까지 마술을 연구하고 연습하며 익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술의 재미가 무엇인지 물으니 김민성 학생(기초과정부 20)은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져 놀라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형욱 학생은 “마술을 시작하면 관객들은 마술사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하지만 속아도 화를 내기는커녕 즐거워한다”며 “이러한 즐거운 의심이 마술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마술이 보여주는 진짜 마법은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김영준 회장은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면 쉽게 호감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새내기 시절 간단한 마술을 배워 개강총회 때 보여줬는데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단번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냐며 말문을 트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자리에서 SNS 친구까지 맺었습니다.”
황민수 학생(바이오메디컬공학과 19)은 “마술을 배운 뒤 타인들에게 말을 잘 걸 수 있게 돼 소심한 성격을 고쳤다”며 “조커의 활동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열심히 갈고닦은 마술 실력으로 무대에 서 관객의 환호를 받는 일도 조커 회원들의 즐거움이다. 교내 단체나 지역 행사 등 이런저런 모임으로부터 마술 공연을 의뢰받곤 하는데 즐거움을 나눠주기 위해 기꺼이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UNIST 교내 유치원으로부터 마술 공연 요청이 있었는데 당시 무대에 섰던 김영준 회장은 마냥 신기해하던 관객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준비하다 보니 단번에 트릭을 알아차리거나 보고도 놀라지 않으면 무안하기도 하고 허무해집니다. 당시 유치원 선생님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나이를 불문하고 굉장히 놀라는 모습에 뿌듯하고 신났습니다.”
‘함께해요’ 마술의 즐거움
조커 회원들은 충분한 연습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절대 무대 위에 서지 않는다.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관객에게 박수를 받으려면 그만큼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대에 서길 원하는 회원이 없으면 정중하게 거절한다.
마술을 즐기기 위해 모였는데 마술 때문에 중압감을 느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조커의 활동은 자유롭고 제약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2018년 이후 사회적으로 마술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조커에 관심을 갖는 신입회원 수도 감소했다. 이대로 폐부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당시 한 회원이 유튜브로 마술을 익힌 후 열심히 주변에 마술의 즐거움을 전파한 덕분에 회원들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김영준 회장은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정기공연을 할 수 없지만 하루빨리 정기공연뿐 아니라 버스킹 공연, 타로 부스 운영 등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재개할 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조커의 행복한 마법이 모쪼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전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