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효율의 태양전지를 개발한 석상일 교수가 UNIST에 안착했다. 석 교수는 대규모 제작 공정이 가능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1년 사이 세 번이나 세계 최고효율을 갱신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기존의 3분의 1 수준. 이미 최고의 연구자가 된 그가 UNIST를 찾았다. UNIST를 배경으로 펼쳐나갈 석 교수의 행보가 궁금하다.
“에너지는 인류가 생존하고 삶을 지속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예요. 우리가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지금처럼 편리하고 쾌적하게 살려면 외부 에너지를 동원할 수밖에 없죠.”
지난 9월 UNIST에 부임한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석상일 특훈교수의 말이다. 석 교수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태양전지 분야를 연구해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특히 실리콘 태양전지를 대체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활약이 두드러진다. 가을볕이 좋은 10월 초 UNIST 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인류가 풀어야 할 에너지 문제부터 짚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에너지원은 석유나 석탄, 원자력 같은 ‘하드 에너지(hard energy)’다. 이들 에너지원은 환경공해를 일으키거나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소프트 에너지(soft energy)’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소프트 에너지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하드 에너지에 비해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기술력과 생산성은 물론 가격 대비 성능까지 따지고 보면 아직도 하드 에너지가 우세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친환경에너지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 태양 에너지 전문가인 석 교수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원류 역시 태양입니다. 수억 년에 걸쳐 지구로 향한 태양에너지를 바탕으로 축적된 것들이 연료가 됐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어제도 뜨고 오늘도 뜨고 내일도 어김없이 떠오를 태양에너지 속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양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태양빛을 우리가 쓰는 전기 형태로 만들어 주는 태양전지로 만들면 된다. 현재 상용화된 태양전지의 90% 이상에는 실리콘이 쓰인다. 실리콘은 1950년대에 발견됐는데, 그동안 꾸준한 연구로 효율을 높이고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췄다. 그런데 최근 60년간 효율을 높여온 실리콘을 단숨에 따라잡은 태양전지 후보물질이 있다. 바로 ‘무・유기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소재’다.
지극한 노력으로 결과에 다다르다
“작년부터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급속도로 이뤄진 결과물에 다들 놀라워했죠. 단기간에 이룬 효과라고요? 그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석상일 교수의 전공은 무기물인 세라믹이다. 태양전지를 시작하기 전에는 순수 유기물을 이용한 전자재료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무기물과 유기물의 장점을 결합할 수 있는 무・유기 하이브리드 소재에 대해 고민했다. 둘을 합치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할 가능성이 높아져 다양한 분야로 응용할 수 있는 폭도 커질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무기태양전지와 유기태양전지의 특성을 조합해 더 뛰어난 효율의 전지를 만들 수 없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의 무・유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연구는 2006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염료감응 태양전지’나 ‘유기태양전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실리콘을 대체한 차세대 태양전지의 후보로 두 종류가 주목받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석 교수는 과감하게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들이 하는 연구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자신만의 연구 성과를 내기 어렵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석 교수는 “원래 연구하던 무・유기 하이브리드 소재는 광통신 분야에 응용됐는데 2000년 중반이 지나면서 이 분야에 열기가 식어버렸다”며 “새로운 분야로 태양전지를 떠올렸는데, 후발주자인 만큼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0년 전부터 연구에 돌입했고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첫 단계의 목표는 효율 3%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효율이 나오지 않아 자칫 지원금이 끊길 뻔했다. 다행히 평가 종료 6개월을 앞두고, 세계적인 학술지 중 하나인 ‘나노 레터(Nano Letter)’에 효율 5%가 넘는 태양전지를 발표할 수 있었다.
금상첨화, 장점에 장점을 더하는 연구
석 교수의 특기는 물질이 가진 특성 중 장점만을 조합해 새로운 해결법을 찾는 것이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를 뭉쳐보면 이전과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늘 성공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특성이 나빠지고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도 ‘기어이 답을 찾겠다’는 과학자의 뚝심으로 끊임없이 도전했다.
“2009년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일본에서 태양전지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사용한 연구 논문이 나왔거든요.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페로브스카이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관련 논문을 읽으며 이 물질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무기물질과 유기물질이 섞여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무・유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를 연구하던 석 교수에게는 최적의 재료였다. 그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녹아있는 용액에서 용매를 제거하면 쉽게 페로브스카이트 결정을 만들 수 있다”며 “특별한 열처리 과정이 필요하지 않아 제조공정이 쉬울 뿐만 아니라 결함이 적고 결정도 균일해 태양광으로부터 생성된 전자와 정공이 쉽게 분리되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석 교수는 2012년 초에 광전변환 효율 12%에 달하는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플랫폼 구조 기술을 개발해 ‘네이처 포토닉스(Nature Photonics)’에 발표했다. 오랜 연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극도로 균일한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박막 제조에 필요한 새로운 중간상의 생성과 공정 기술에 대한 결과를 ‘네이처 머터리얼스(Nature Materials)’에 실었다. ‘네이처(Nature)’와 ‘사이언스(Science)’에 후속 연구 결과도 실었다.
석 교수의 연구 결과는 미국 재생 에너지연구소(NREL)가 공인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효율차트에서 가장 높다. 더구나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룬 성과다.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며 연일 효율을 높이고 있는 석 교수가 더욱 주목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연구결과를 내면서 학문적으로 기여하고 우리나라 태양전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며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10년 전부터 시작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덕분”이라고 밝혔다.
태양전지의 새로운 가능성, UNIST에 터를 잡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태양전지 석학 반열에 오른 그가 올 가을부터 UNIST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가 이곳을 찾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거스 히딩크가 말했죠.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고. 승리에 대한 굶주림이 그를 최고의 감독으로 이끌었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하고 싶어서 UNIST를 택했어요. 제가 현재까지 이룬 것들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지금까지 아무도 보여주지 못한 연구를 내놓아야죠. UNIST가 저를 믿고 제안한 연구 시설과 연구 공간 역시 이곳을 택한 큰 이유입니다.”
부임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석 교수의 연구실은 아직 휑하다. 연구시설도 채워지기 전이고, 본격적인 수업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를 찾는 연락이 많아 일상이 분주하다. 그가 끌어올린 태양전지 효율을 확인한 이들이 무・유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후속 성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죠. 높은 효율을 가진 무・유기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어느 분야에나 적용 가능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 시스템(BIPV, 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을 이용해 건물의 옥상, 벽, 창문 등에 태양전지를 붙여서 태양에너지도 얻고 건물 외벽의 아름다움도 추구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석 교수는 자신이 만든 태양전지를 현재 UNIST 옥상에 설치돼 있는 실리콘 태양전지 위에 쌓는 텐덤(tendom)형 태양전지로 발전시키는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 중이다. 효율이 더 높은 새로운 형태의 태양전지가 하루 빨리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인다.
최근 흥행한 영화 <마션>에서 험한 고난을 이겨내고 화성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마크 와트니는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말했다. “우주에선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지.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거야.” 라고 .
화성에서 생존 공식은 간단했다. 일단 시도해보는 것. 지구라고 다를까.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것. 석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자에게 연구는 생존과도 같은 문제다. 연구가 뜻대로만 풀리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결국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가 효율 0.1%에 불과하던 태양전지를 끝없는 연구를 통해 20%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처럼 말이다.
[Introduce Schools]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비전: 에너지 및 화학공학은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자연과학 산업의 중추다. 화학공정과 반응 디자인 설계, 재료, 생물공학에 걸친 전통적인 분야부터 에너지 변환 및 저장, 효율, 발전 공학, 환경친화 및 대체에너지 기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에서는 실용적 공학지식을 겸비한 창의적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며, 폭넓은 비전과 지식을 기반으로 인류가 당면한 건강, 에너지, 환경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교육 및 연구 환경: 이 학부에서는 화학공학을 근간으로 에너지 변환 및 저장 응용 학문 간의 첨단융합 교육을 제공해 촉매, 나노물질 및 소자, 정제화학, 고분자, 응용분자화학 및 에너지 관련 학문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제 경험을 성취할 수 있다. UNIST에서는 기초과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화학공학, 생물공학, 에너지공학 등 각 분야의 지식 기술을 접목해 본질적인 문제들을 이해하고, 효율적인 공정을 제시하고 해결한다.
졸업 이후: 화학공학이 우리 삶에 밀접하고 방대한 분야에 걸쳐 있는 만큼 졸업 후 전망도 밝다. 우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화학연구원(KRIC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한국전기연구원(KERI),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같은 정부출연연구원에서 연구자로 활약할 수 있다. 또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에너지관리공단 등의 에너지 관련 공공기업이나 삼성, LG화학, 현대 등 공장 및 화학공정시스템을 가진 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