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트호벤은 여러모로 울산과 닮아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 현대가 울산에 있듯이 네덜란드 대표 기업, 필립스의 흔적을 아인트호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UNIST와 비슷한 아인트호벤공대도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에 울산토박이 소녀, 박은경 학생이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 그녀의 네덜란드 체류기를 들어보자.
목표는 확실하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 당당한 사회인이 되는 것. 하지만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더 넓은 세계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모르는 중요한 무엇이 있지는 않을까. 마침 아인트호벤공대의 교환학생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학부를 졸업하지 않고도 아인트호벤공대 대학원 수업을 수강해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UNIST, 유럽 체험의 기회를 주다
“UNIST에선 전 과목을 영어로 강의합니다. 그 경험 덕에 교환학생 적응은 쉬웠어요. 대학원 수업은 학부 과정보다 기업과 연계가 뚜렷하다는 특징이 있었는데요. 빨리 실전 경험을 쌓고 싶던 저에게는 더없이 좋은기회였습니다.”
은경 학생은 ‘신상품 판매(Selling New Products)’ 수업을 인상적인 강의로 꼽았다. 수업은 교수와 함께 연계된 회사를 찾아가 견학하고, 이 회사의 물건을 팔기 위한 방법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역량 강화(Performance Enhancement)’, ‘마케팅과 혁신(Marketing and Innovation)’ 등 기업 경영 관련 수업도 들었다.
“수업 과제를 진행하면서 놀란 부분이 있어요. 팀원끼리 의견을 교환할 때 굉장히 직설적이더라고요.”
그녀는 이전까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능하면 누군가와 부딪히는 일을 피해왔다. 그래서 불필요하거나 소모적인 논쟁은 피할 수 있었지만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하면서 상대방의 눈치를 살폈던 게 사실이다.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하는 친구들을 보고 그동안 쓸모없는 부분까지 고려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덜란드 교환학생의 경험이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 준 셈이죠.”
남과 다른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은경 학생은 스무 살이 되면서 처음 유럽 땅을 밟았다. 지난 20여 년간 한 곳에서 붙박여 살던 이에게 한 달 동안의 유럽 배낭여행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 그 자체였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유럽은 은경 학생에게 별천지와 다름없었다.
2년 후 교환학생으로 아인트호벤을 찾은 그녀는 학기 중이나 주말, 연휴를 이용해 친구들과 이곳저곳으로 여행 다녔다. 크리스마스에는 첫 유럽 여행 때 방문한 파리의 센 강변을 다시 찾아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으며 새로운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방학 동안에는 여행 대신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로 했어요. 보통 교환학생으로 해외에서 방학을 맞은 친구들은 방학 동안 여행을 하는데요. 이보다 졸업 후 가고 싶은 회사들의 해외지사를 방문하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즉흥적인 생각이었지만 행동은 체계적이었다. 방문하고 싶은 회사들의 목록을 뽑아 방문을 원하는 이유와 만나서 묻고 싶은 것들에 대해 메일을 보냈다. 메일만 보내고 마냥 기다렸던 건 아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거절하거나 메일을 확인하고도 답신이 없는 곳에는 직접 전화를 걸어 한 번 더 가능성을 물었다.
그 결과 다섯 곳의 해외 지사 또는 법인을 방문하게 됐다. 특히 현대중공업 로테르담 지사에서는 ‘지금 당장 찾아와도 괜찮다’며 호쾌하게 허락했다. 그녀는 곧바로 로테르담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
해외지사까지 찾아온 그녀에게 사람들은 ‘해외지사 취업이 목표냐’고 묻는다. 하지만 은경 학생은 기업에 자리 잡고 일하는 인생 선배를 만나 다양한 경험을 배우고 싶었을 뿐이다. 그 바람대로 먼 타국에서 만난 선배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고 싶은데 이런 열정이 평생 가기는 어렵잖아요. 이런 제 고민을 털어놓으니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거대한 포부를 안고 입사한 신입사원 때와는 달리 일을 하면서 점점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그럴 땐 일상 속에서 사소한 성취를 찾아 기분전환을 하라는조언도 함께요.”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에도 학부 생활로 바쁜 그녀지만 이따금 네덜란드가 생각난다. 비가 자주 내리는 날씨 때문에 바람막이로 대충 몸을 감싼 후 비를 뚫고 집 앞 마트에서 갓 나온 크루아상과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맛있게 해 먹었던 기억, 보름달이 뜨고 실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불이 켜진 코트에서 달빛을 벗 삼아 테니스를 배우던 추억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네덜란드는 그녀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기회의 땅으로 남아있다.
UNIST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란?
UNIST에서는 1년에 두 번 교환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교환학생을 희망하는 이들은 전 학기 평균평점 3.3 이상이어야 하며 지원하는 대학별 자격요건을 채워야 한다. 영국의 스트라스클라이드대,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공대, 독일 베스트팔렌 빌헬름 뮌스터대 등 자신의 전공과 관심 분야에 맞는 대학에 따라 자격요건은 상이하다.
UNIST에서는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해 교환학생 기간 동안 해당 교육기관에서의 학비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박은경 학생은 지난해 9월, EU 과학기술보고서 ‘Science and Technology Indicator 2003’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옥스퍼드 대학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영향력 있는 연구 성과를 낸 아인트호벤공대의 교환학생으로 선정됐다. (교환학생 프로그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