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눈으로만 관찰하던 인류는 이제 ‘원자’까지 볼 수 있게 됐다. 광학현미경에 이어 등장한 전자현미경 기술이 발달한 덕분이다. 물론 원자 크기까지 들여다 볼 장비가 흔한 건 아니다. 몸값만 해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최첨단 장비를 UNIST가 아시아 대학 최초로 설치했다. 2011년 자연과학관 지하 연구지원본부에 자리 잡은 ‘원자분해능 수차보정 투과전자현미경(advanced TEM)’이다. 원자 크기까지 실시간으로 보게 된 인류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첨단투과전자현미경 전문가, 이종훈 교수에게 들어봤다.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법 중 하나는 ‘직접 관찰’이다. 이는 속담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와도 일맥상통한다. 과학은 관찰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검증하고 진보시킨다. 무언가를 직접 관찰하려는 인류의 욕구는 1930년대 초,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e) 발명으로 이어졌다.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된 전자현미경은 85년이 지난 지금 신소재, 나노과학, 반도체, 생물, 의학 등의 첨단 연구 분야에서 필수적인 장비로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우리에겐 조금 낯선 전자현미경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직접 관찰’ 가능케 한 전자현미경의 발명
현미경(microscope)은 직접 관찰에서 가장 핵심적인 도구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물체나 물질을 확대해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현미경이라 하면 ‘광학현미경(light microscope)’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광학현미경에는 유리로 만든 렌즈가 들어가는데, 이들이 결합해 빛을 굴절시키면 물체의 상을 확대시킬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주 작은 물체를 확대시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물체 크기는 0.2 마이크로미터(㎛, 1㎛=0.000001m)에 그친다. 빛의 파장에도 한계가 있어 그보다 작은 물체를 식별하기는 어렵다. 이런 물리적 한계를 ‘아베 회절한계(Abbe diffraction limit)’라고 한다.
현대과학에서 관찰하는 대상들은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크기보다 훨씬 더 작다. 이런 물체나 물질을 보려면 새로운 장치가 필요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해 새로 등장한 게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e)’이다. 전자현미경은 빛보다 파장이 훨씬 작은 전자빔(electron beam)을 이용해 상을 확대한다. 전자기장으로 전자빔을 굴절시켜 0.2㎛보다 더 작은 물체도 확대시키는 원리다. 이런 전자현미경을 발명한 인물은 독일 물리학자인 러스카(Ernst Ruska)다. 1931년 세상에 등장한 이 장비는 이후 과학계 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 러스카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됐다.
전자현미경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다양한 분야에 활용됐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반도체의 구조와 결함 분석, 선폭 측정 등에 쓰였고, 금속재료 분야에서는 금속 성분과 구조 분석, 전위와 입계 등의 결함 분석, 변형구조 분석 등에 활용됐다. 신소재의 물성을 평가하거나 나노구조를 분석하고, 의료와 생물 분야에서는 세포와 분자구조를 분석하는 데 이용된다. 또 산업 분야에서 품질 관리하는 데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전자현미경의 공간분해능(spatial resolution)은 이론적인 수준인 0.004 나노미터(nm, 1nm=0.000000001m)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공간분해능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전자현미경의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다. 실제 전자현미경이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이론적인 분해능까지 구현하기 어렵다. 전자현미경의 전자빔을 굴절시키는 전자기적 렌즈 제작이 까다롭고, 렌즈가 아주 정교하게 제작되더라도 전자빔의 굴절이 불완전한 수차(aberration)의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결국 분해능을 개선하기 위해 전자빔 굴절을 적극 보정하는 수차보정(aberration correction) 기술이 도입됐고, 상용화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수차보정의 결과 전자현미경의 공간분해능이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이에 따라 화학적 해석법 발전, 분석의 안정성, 저전압에서 작동하는 현미경 개발 등 획기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UNIST advanced TEM이 이룬 과학적 성과
UNIST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분해능 수차보정 투과전자현미경(TEM,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인 ‘advanced TEM’을 아시아 최초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신소재 연구에서 핵심 장비인 이 장비는 2011년 설치된 다음 해부터는 본격 운용돼 세계적인 연구결과 발표에 기여하고 있다.
이 현미경의 공간분해능은 0.5 옹스트롬(angstrom, 0.0000000001m)에 달한다. 이는 가벼운 원소인 탄소, 붕소, 질소, 산소 등의 단일 원자의 크기보다 작다. 다시 말해 이 현미경을 이용하면 단일 원자들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이 장비를 이용하면 신소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 구조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또 물성에 영향을 미치는 결함 등도 실시간 관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그래핀 등 탄소나노재료에서 단일 탄소 원자들의 배열구조, 결함구조, 화학성분, 탄소원자에 붙어 있는 원자들을 관찰할 수 있다.
최근 필자의 연구그룹에서는 질화붕소(hBN)에서 삼각형으로 원자 구멍이 생기는 과정을 포착했다. 두 원소가 결합된 이차원재료에서 결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파악한 최초의 연구다. 이차원재료는 흑연이나 그래핀처럼 원자의 얇은 막 구조로 이뤄진 물질인데, advanced TEM 덕분에 자세히 관찰하게 된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질화붕소 원자막에 전자빔을 쏘아 삼각형으로 결함이 생기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흑연과 구조가 비슷해 ‘백색 흑연’이라고도 불리는 질화붕소는 그래핀과 정반대로 전기 절연성이 뛰어나 부도체 소재로 활용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소자용 재료다.
사실 질화붕소는 고분해능 투과전자현미경 안에서도 원자 수준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소재였다. 그래서 필자의 연구진은 질화붕소의 변화 과정을 연속 촬영해 원자 수준의 관찰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 UNIST에 설치한 저전압 수차보정 투과전자현미경이 활용됐다. 또 관찰 결과를 계산과학으로도 해석해 원자 하나의 움직임까지 추적할 수 있었다. 이차원재료에서 원자가 손상되면서 구조에 구멍이 생기는 전체 과정을 밝혀낸 것이다. 이를 통해 물리학과 재료과학의 융합 수준을 진일보시킬 수 있었다.
또한 최근 각광받는 반도체 성질의 이차원재료인 이황화몰리브데늄(MoS₂)에서 전자빔에 의해 결함이 생기는 과정도 관찰했다. 전자빔의 영향을 받아 황 원자들이 떨어지고 직선결함들이 발생하며 이들의 합체에 의해 구멍이 생성되는 걸 직접 본 것이다. 이 구멍 주변부에는 몰리브데늄 금속 원자들이 모여 새로운 단원자층 나노구조를 만들었는데, 이 현상도 처음 보게 됐다.
세계 최고의 전자현미경 연구를 기대하며
수차보정 전자현미경 기술은 복잡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어 아주 까다롭다. 하지만 관련 이론과 재료과학적 지식, 운용 능력 등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 누구나 전자현미경 학자가 될 수 있다. 만약 이 분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면 UNIST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차보정 전자현미경 장비를 운용하면서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현미경을 한 번 들여다본 연구자는 그 매력에 빠지게 된다. 원자 수준에서 재료를 관찰하면서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미시세계로 들어가는 희열을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인류의 삶을 혁신시킬 신소재 개발을 앞당기는 데도 기여하게 된다. 재미와 보람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멋진 분야다. 필자는 앞으로 새롭게 개발될 차세대 전자현미경 장비들과 더불어, 과학적 지식을 보유한 전문 연구자들이 UNIST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신소재 연구를 지속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글_ 이종훈 신소재공학부 교수
ADVANCED TEM(Tranmission Electron Microscope)에 대하여
투과전자현미경(TEM)은 고공간분해능으로 물질의 미세 구조물을 분석하는 데 사용된다. 전자총으로부터 나온 고전압전자빔이 얇은 필름 샘플에 비쳐 샘플을 뚫고 전자기렌즈와 전자회절패턴의 고해상도 전자영상을 통해 나타난다.
Advanced TEM으로 촬영할 수 있는 영상 및 분석법
•서브옹스트롬 공간분해능 TEM
•저전압의 원자분해능
•연성 물질의 이미지화와 분광학
•개별 원자 역학
•전자에너지 손실 분광, 에너지 분광의 고에너지분해능
•에너지 필터링 이미지화와 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