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는 2차 전지 분야에서 스탠포드대, MIT와 함께 세계 TOP 3의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2차 전지는 충전해서 반복 사용할 수 있는 전지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휴대용 전자기기에 쓰이고 있다.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배터리가 가장 대표적이며, 니켈-카드뮴, 리튬이온, 니켈-수소, 리튬폴리머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빨리 충전되고 오래 쓰며 힘센 2차 전지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는 UNIST 연구실에서 2차 전지 속살 사진을 구했다.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양극, 음극, 분리막은 어린 시절 가족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1_ 분리막 집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 같다. 아버지처럼. 그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지는 기둥은 사실 ‘역오팔 분리막’이다. 기둥에 감겨있는 것은 1mm 두께의 ‘철사’다. 분리막은 2차 전지에서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존재다. 이 사이로 리튬이온이 지나다니며 충전과 방전을 진행한다.
사진 속에 보이는 역오팔 분리막은 이상영 교수팀이 보석인 오팔의 구조를 모방해 개발한 것이다. 이 분리막은 얇은 철사에 감긴 상태에서도 변형되거나 부서지지 않는 강성을 보였다. 저온주사전자현미경(모델명 S-4800)을 이용해 30배율로 찍었다.
2_ 분리막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머니는 콩을 간 다음 체에 걸러서 콩국수를 해주곤 했다. 촘촘한 그물망 사이로 콩국물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설레는 장면이었다. ‘역오팔 분리막’의 표면을 살핀 사진에서 콩국수를 거르던 체가 떠오른다.
분리막에는 마치 벌집처럼 수많은 구멍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데, 이 구멍 사이로 리튬이온이 지나다닌다. 구멍이 많고 규칙적일수록 리튬이온이 쉽고 빠르게 지나다닐 수 있어 2차 전지의 성능이 좋아진다. 저온주사전자현미경 (모델명 S-4800)을 이용해 70,000배율로 찍었다.
3_ 음극 학교 가던 길 한편에는 언제나 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 어여쁜 생김새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활짝 핀 꽃처럼 보이는 사진 속 주인공은 2차 전지의 음극 물질이다. 2차 전지 음극 물질로는 주로 그래파이트(흑연)가 활용된다. 조재필 교수팀은 오래 쓰고 가벼운 배터리를 만들 새 음극 물질을 찾고 있다. 실리콘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많은데, 사진 속 물질은 실리콘에 철을 혼합한 물질이다.
꽃핀 것처럼 펼쳐진 모양 덕분에 리튬이온이 음극에 닿을 표면적이 넓어진다. 한꺼번에 많은 리튬이온이 음극 물질과 반응하면 배터리의 출력도 높일 수 있다. 전자현미경(FEI사 Verios 460)을 이용해 15,000 배율로 찍었으며 스캔 전압은 15kV, 전류는 1.6nA이다.
4_ 음극 언제나 달의 뒷면이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조금만 더 자라 손을 뻗으면 꺼칠꺼칠한 달 표면에 닿을 것도 같았다. 달처럼 둥그렇고 거친 표면을 가진 이 물체 역시 음극 물질이다. 안정성이 높은 그래파이트에 실리콘을 나노 단위로 겹겹이 쌓아 놓았다.
실리콘은 용량이 크므로 가볍고 오래 쓰는 배터리를 만들기 좋다. 이렇게 만든 물질은 그래파이트의 안정성과 실리콘의 효율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전자현미경(FEI사 Quanta3D FEG)을 이용해 10,000배율로 찍었으며 스캔 전압은 20kV, 전류는 1.6nA이다.
5_ 양극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나면 어머니는 한과를 내오셨다. 쌀가루 가득 묻은 한과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한과를 닮은 사진 속 동그란 물체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양극에 쓰일 수 있는 니켈이 풍부한 물질이다.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간, 산소를 각각 ‘1 : 0.6 : 0.2 : 0.2 : 2’의 비율로 섞어서 만든 이 물질 역시 배터리를 더 강력하게 만들 양극 물질 후보다. 전자현미경(FEI사 Verios 460)을 이용해 5,000배율로 찍었으며 스캔 전압은10kV, 전류는 0.8nA이다.
6_ 양극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선물 받은 거라며 새초롬한 표정으로 건넨 초콜릿. 아몬드 알갱이가 촘촘히 박힌 동그란 초콜릿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아몬드 초콜릿을 닮은 동그란 물질 역시 니켈이 풍부한 양극 물질 후보다. 5번 사진과
다른 점은 망간 대신 알루미늄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리튬과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산소를 각각 ‘1: 0.8 : 0.15 : 0.05 : 2’의 비율로 섞어 만들었다. 동그란 표면은 울퉁불퉁한 모습인데 이 역시 표면적을 넓혀 리튬이온과의 반응을 돕기 위한 것이다. 전자 현미경(FEI사 Verios 460)을 이용해 10,000배율로 찍었으며 스캔 전압은 10kV, 전류는 0.8nA이다.
7_ 양극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옆집 아저씨네 집 석류나무로 손이 갔다. 한 입 베어 물면 새빨간 즙이 묻어날 듯 알갱이들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석류 알갱이가 쏟아질 것 같은 사진 속 물질은 4번 사진에 있는 양극 후보 물질이다. 300회 충전한 다음 관찰한 모습이라 용량이 줄어든 걸 확인할 수 있다.
양극 물질 역시 리튬이온과 반응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알갱이들이 뭉쳐져 있다. 표면이 이런 형태면 리튬이온이 접촉할 수 있는 전체 면적이 늘어나기 때문에 배터리의 효율이 더 높아진다. 전자현미경(FEI사 Verios 460)을 이용해 30,000배율로 찍었으며 스캔 전압은 10kV, 전류는 0.8n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