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울프리카’라 불리는 울산의 더위는 도무지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맹렬하게 돌진하는 열기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갓 스물을 넘긴 청춘들은 애초에 더위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조정 보트 위에 오른 UNIST 조정 동아리의 젊음이 궁금하다.
어슴푸레 동이 트는 새벽 다섯 시,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UNIST 조정 동아리의 합숙훈련이 시작됐다. 올 여름 합숙훈련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스무 명이다. 올해 첫 교정을 밟은 새내기 UNISTAR부터 조정부 초창기 멤버인 선배까지 다양한 이들이 한마음한뜻으로 모였다.
학생들 중에는 3학년도 눈에 띄었다. 보통 고학년이 되면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대외활동을 줄이지만 홍정순 학생(기계 및 원자력공학부)의 선택은 달랐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작년 합숙훈련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조정 동아리 멤버가 합숙훈련 한 번 못하고 졸업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한 계절을 조정에 바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열정으로 불태우는 UNIST의 여름
단잠을 억지로 떨쳐내며 도착한 곳은 ‘훅~’ 하고 짠내가 밀려들어오는 태화강 하류였다. 멤버들은 각자 준비운동을 마치고 여덟 명이 함께 타는 에이트(eight)와 여성, 남성 팀으로 각각 운영되는 포(four)를 강기슭으로 옮겼다.
강이긴 하지만 물길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배를 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수심이 얕고 소금기가 든 물은 여느 강과 달리 무게가 무거워 노를 젓는 게 어렵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물살을 따라잡으려는 선수들은 아직 굳은 몸을 분주하게 풀고 있다. 이렇게 태화강을 두어 번 왕복하다 보면 삐걱삐걱 맞지 않던 동작이어느새 한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호흡이 맞아간다는 증거다.
찰떡궁합, 호랑이 선생님과 학생들
“소금물을 들이키세요. 염분 보충해야 합니다!”
신현옥 외부코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덥고 목이 마른 선수들이 시원한 얼음물에만 손을 대자 호랑이 선생님이 나선 것이다. 조정은 정식 코스 2km를 전력질주하면 몸무게가 1.5kg이 빠질 정도로 힘든 스포츠다. 이 때문에 운동하는 중 몸에서 빠져나가는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 시시각각 소금물을 마셔야 한다.
그런데 당장 목 마른 선수들이 찾는 건 차가운 얼음물이다. 밍밍한 맛의 소금물은 영 익숙하지 않아 멀리하다 보면 신 코치에게 혼쭐이 난다. 그의 지도에 따라 일제히 소금물을 들이킨 선수들은 다시 노를 젓는 훈련에 들어간다.
학교 체험 프로그램서 싹튼 조정부
조정부의 시작은 학교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2013년 UNIST는 모든 학부생이 필수 이수하는 과목인 ‘리더십 프로그램’에 조정을 개설했다. 시범적으로 연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참가 신청을 받자마자 금세 정원이 다 찰 정도로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이 과목을 신청한 학생들은 충주 조정체험학교를 방문해 로잉머신을 이용한 체력단련 교육, 실전체험, 보트 장거리 투어 등 훈련을 받았는데, 신 코치와의 인연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그러더니 그해 여름 부산 강서조정경기장에서 열린 ‘제6회 부산시장배 조정대회’에서 UNIST 학생들이 남자대학부와 남자일반부 2종목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조정 프로그램을 실시한 지 불과 석 달만의 성과였다.
이후 자연스럽게 조정부가 결성됐고 현재 대학생부와 일반부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대회 일정에 맞춰 훈련 일정을 소화한다. 학기 중에는 주말에 활동하지만 시합이 있을 경우 새벽 훈련도 불사하는데 이번 방학에는 각종 조정 대회를 위해 본격적인 합숙훈련에 돌입했다.
2주간 집중 훈련하며 한 호흡 맞춰!
학생들은 평소 교본이나 동영상 등을 통해 이론을 습득 후 훈련에 돌입한다. 하지만 실전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조정의 경우 한 호흡에 맞춰 리듬을 타며 노를 저어야 하는데 이러한 박자 감각을 실제로 구현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신현옥 코치는 “학생들이 훈련하면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고 경기를 앞둔 이들을 독려하기 위해 2주 동안 여름 합숙훈련에 참여했다”며 “힘들게 연습하는 아이들이 대견한 반면 안쓰러운 부분 역시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프로선수였던 신 코치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가르치려는 듯 운동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스케줄을 강구하는 한편 자세 교정을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아이들을 매의 눈으로 좇고 있었다. 바른 자세가 아닌 편한 자세로 무리하게 훈련하다가 허리가 삐끗하거나 인대가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UNISTAR!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
조정부 일원의 살갗은 모두 까맣게 탔다. 자외선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고자 얼굴 가득 바른 선크림이 그을린 피부와 대조돼 까만 피부가 더욱 도드라졌다. 래쉬가드로 가려 태양이 침투하지 못한 하얀 살갗이 훈련 강도를 짐작케 했다.
변한 건 피부 색깔만이 아니었다. 노에 밀려 양손 가득 잡힌 물집은 터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여러 번, 기어이 양손바닥에는 단단한 딱지가 자리 잡았다. 거칠어진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 보며 조정 동아리 회장 김건하 학생이 말을 잇는다.
“아프면 말하고 병원 다녀오라고 하는데도 쉬지 않고 무리하다가 탈이 난 경우가 많아요. 허리가 아프고 인대가 늘어나 병원에 다녀온 친구들이 콕스라도 하겠다고 계류장에 나타나면 회장으로서 정말 든든하고 고맙죠.”
합숙은 끝나도 조정은 계속된다
기꺼이 방학을 모두 반납한 조정부는 한 달이라는 합숙기간 동안 훈련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캠퍼스와 태화강을 오갔다. 강도 높은 스케줄도 묵묵히 참아내게 하는 조정의 매력에 대해 물었더니 건하 학생이 망설임 없이 답한다.
“물에서는 속도를 빠르게 내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조정은 단 네 명이라도 합만 잘 맞추면 굉장히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요. 보트 위에서 멤버들이 완벽하게 호흡을 맞췄을 때 부드럽게 보트가 나아가는 그 순간 가장 가슴이 뛰어요. 짜릿한 손맛이 느껴지거든요.”
합숙훈련이 끝난다고 해서 조정 동아리의 여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보트 위에 올라야 한다. 태화강은 당분간 쉼 없이 노를 젓는 UNIST 조정부의 열띤 구호로 가득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