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 환경, 실업, 빈곤, 주거, 교육…. 도시는 언제나 해결해야 할 숙제들로 가득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들을 해결할 키워드는 바로 빅데이터.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단기간에 급속도로 누적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들은 단박에 도시문제의 해결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 그 답은 UNIST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학생들이 쥐고 있다.
UNIST 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기술경영대학원으로 나뉘어 있다. 기술경영대학원은 기술과 경영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데, 특히 비즈니스 분석(Business Analytics, BA) 과정은 다양한 수업을 들으면서 실무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게끔 설계됐다. 이 과정을 듣던 몇몇 대학원생이 공공데이터 활용 경진대회에 참가했다. 수업 중 배운 지식을 가만히 놔두자니 아깝고, 배운 게 실생활에 얼마나 도움될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대도 않던 수상 소식이 속속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나도 둘도 아닌 셋씩이나!
배워서 남 주는 학문, 데이터 분석
지난 학기 동안 기술경영대학원 BA과정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고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6월 한 달 동안 시행된 ‘글로벌 데이터톤 2015’ 공모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데이터톤은 아시아 빅데이터를 이용해 복지, 교통, 환경 분야 등 도시현안을 해결할 아이디어를 발굴하려는 취지로 마련된 공모전이다. 이 대회에 참가한 채수연, 이승준, 정상원 씨는 자연적으로 환기가 되지 않는 지하철에 집중했다. 지하철역 등에 공기 중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많이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세 사람은 기상청과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공오픈데이터를 이용해 지하철의 공기를 효율적으로 정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유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표시해 지하철 이용객이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오염도 높은 시간과 구간을 피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용객의 자발적인 건강관리를 유도하는 이 아이디어는 실용성과 공익성을 인정받아 글로벌 데이터톤 대상인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공모전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윤자송, 김효은, 김우희 씨는 메르스, 사스, 에볼라 같은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범국가적・대륙적 통합 관리가 어려운 상황을 문제로 인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사용할 때마다 가장 가까운 기지국에 기록되고 축적되는 통신사의 로그데이터가 필요했다.
휴대전화의 위치정보와 통화량을 바탕으로 인구 이동 경로와 밀도를 알 수 있게 되면 이 데이터를 분석해 전염병 확산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전염병 발생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아이디어로 세 사람은 글로벌 데이터톤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장상을 거머쥐었다.
장우진, 정상원, 이승준 씨는 한국임업진흥원에서 개최한 ‘제1회 공공데이터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에 도전했다. 이들은 자전거 도로, 전통마을, 숲 지리정보 등 공공데이터 활용도와 여행객을 산촌마을로 유도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여 대상을 받았다. 캠핑장과 가까운 전통마을, 숲, 휴양림에는 가족단위 캠핑객들을 위한 맞춤형 숲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캠핑장을 찾은 이들의 방문을 유도하는 아이디어다. 이는 조만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만들어져 상용화될 예정이다.
서로 다른 우리가 만들어내는 시너지
이들 6명은 모두 서로 다른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했다. 호텔경영, 경제학, 수학, 경영학, 식품자원경제학 등. 모두 자신이 공부한 분야를 좀더 폭넓게 이해하고 현실에 접목시키기기 위해 UNIST에 모였다. 각기 다른 이들이 모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시너지 효과가 나왔다. 각자가 지닌 배경지식과 경험이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식견까지 넓혀준 것이다.
단순히 전공과목이 다른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향 또한 달랐다. 구현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채수연 씨에게는 증명할 데이터가 있는지 묻고 따지는 이승준 씨의 제재가 필요했다. 오리무중인 아이디어도 일단 정상원 씨가 확신을 가졌다면 팀원들은 한시름 놓는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결론을 내고 매듭을 짓고야 마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채수연 씨가 많은 현장 경험으로 큰 그림을 그린다면, 분석에 강한 윤자송 씨가 아이디어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검증했다. 탄탄한 아이디어는 광고홍보를 전공한 장우진 씨의 손을 거쳐 세련된 아이템으로 거듭났다.
다함께 공모전을 준비하니 좋은 점이 한 가지 더 추가됐다. 제출 전 각자의 아이디어를 서로에게 발표하고 마지막으로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에 익숙해져 못 보고 지나쳤던 부분까지 세세하게 살펴보고 보완할 수 있었다.
데이터는 그저 자료일 뿐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자료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능성은 무한으로 확장된다. 공모전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깊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하나의 데이터를 이용해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과연 우리 앞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데이터는 무
엇일까’하고. 공모전 수상은 고민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였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결국 인간의 선한 의지임을 증명했다. 조만간 밝은 미래를 꿈꾸는 UNISTAR들의 기분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