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칠성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길잡이였다. 험한 바닷길을 헤치는 항해사는 이 별로 방향을 잡았고, 자녀의 성공을 기원하는 어머니는 칠성님께 기도했다. 이 별이 천체물리학자들에게도 새로운 길잡이가 되고 있다. 북두칠성 방향에서 다수의 ‘초고에너지우주선(ultra-high energy cosmic rays)’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이 입자들이 어디서 왜 왔는지 알게 되면 인류는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자연과학부 류동수 교수가 안내하는 초고에너지우주선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주에서 날아오는 특별한 존재가 있다. 에너지를 많이 가진 입자, 우주선(cosmic ray)이다. 빅터 헤스(V. Hess)는 이를 발견한 공로로 193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후 우주선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늘었다. 또한 입자를 검출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주선 자체가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의 중요한 주제가 됐다.
우주선 중에는 아주 높은 에너지를 가진 것들도 있다. 가로 세로가 1km인 면적에 1년에 한 개씩만 드물게 떨어지는 ‘초고에너지우주선’이 바로 그것. 이들의 에너지는 1018eV(electron Volt) 이상으로 강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초고에너지우주선의 에너지는대략 1020eV인데, 이는 초속 100m의 야구공이 갖고 있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우리 은하계 밖에서 온다고 추정되는 초고에너지우주선은 과학자들을 자극했다. 이렇게 큰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의 물리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지구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밀스런 입자’ 잡으려 남반구・북반구 대형 망원경 설치
초고에너지우주선의 기원을 밝히려면 먼저 정체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초고에너지우주선의 검출을 위한 실험이 과거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재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두 가지인데, 모두 지금까지의 경험과 기술을 집대성한 대규모 실험이다.
남반구에는 프랑스 학자의 이름을 따서 ‘피에르 오제(Pierre Auger)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남미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아르헨티나 초원에 대규모 망원경 등을 설치하고 실험을 진행 중이다. 아르헨티나는 넓은 지역을 확보할 수 있어 실험지역으로 선택됐다. 1km2 당 1년에 하나씩 떨어지는 이 입자를 잡으려면 수백km2에 망원경을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반구는 우리 은하의 중심 방향을 관찰할 수 있어 천체 실험에 유리하다고 판단됐다.
남반구의 반대편인 북반구에서는 ‘텔레스코프 어레이(Telescope Array)’의 실험이 한창이다. 일본과 미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과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이 실험은 미국 유타 사막에서 펼쳐지고 있다. 최근 초고에너지우주선이 우리 은하계 밖에서 온다고 추정되면서 검출 지역이 반드시 남반구일 필요가 없어졌다. 현재 유타 사막에 설치한 수백 대의 입자검출 장치와 여러 기의 대기 형광복사 관측 망원경은 아주 드물게 떨어지는 입자검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입자, 대체 어디서 왔을까
두 프로젝트는 지난 10년에 걸쳐 초고에너지우주선 검출 자료를 축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입자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우선 이 입자가 생성된 천체는 우리와 비교적 가까울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아무리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라고 해도 우주공간에서는 이 에너지를 잃어버리기 쉽다. 우주공간은 텅 빈 게 아니라 우주배경복사 광자(photon) 등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에너지우주선이 우주공간에 전파되는 동안 광자 등과 상호작용하면 원래의 에너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또 초고에너지우주선은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지구로 오는 경로가 휘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지구에서 검출되는 초고에너지우주선은 우리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 대략 수천만 광년에서 1억 광년 이내에 있는 천체에서 초고에너지우주선이 왔다고 짐작할 수 있다.
초고에너지우주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제시된 가설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입자물리 모델에 따른 가설이다. 빅뱅 이후 우주가 갑자기 팽창했던 인플레이션 시기에 만들어진 결함이나 우주거대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암흑물질 입자가 붕괴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천체물리 모델에서 제안한 ‘천체에서 초고에너지우주선이 생성된다’는 설명이다. 우주에는 많은 종류의 천체들이 존재하지만, 1018~1021eV와 같은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 입자를 만들 수 있는 천체는 많지 않다. 활동성 은하핵, 전파은하, 감마선 폭발체, 은하단 충격파 등 몇 종류의 천체만이 이 정도로 높은 에너지의 초고에너지우주선을 만든다는 견해다.
초고에너지우주선 기원의 실마리 잡다
최근 텔레스코프 어레이 실험 그룹은 초고에너지우주선이 북두칠성 근처에서 검출됐다는 사실을 미국 천문학회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는 2008년 5월 11일부터 2013년 5월 4일까지 5년에 걸쳐 검출한 결과다. 5.7×1019eV 이상의 에너지를 가지는 72개의 초고에너지우주선 중 19개가 큰곰자리의 북두칠성 부근의 비교적 좁은 영역에서 검출된 것이다.
하지만 큰곰자리의 북두칠성 근처에는 초고에너지우주선의 근원이 될 만한 후보 천체가 없다. 이는 초고에너지우주선의 기원에 대한 여러 추측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초고에너지우주선이 전파은하, 은하단 충격파와 같은 천체에서 생성된 후, 우주공간을 떠돌아다니다가 지구에 도착했다는 설명이다.
필자는 텔레스코프 어레이 실험 그룹의 일원으로 이번 발견을 보고한 논문의 공저자다. 또 물리학과의 박사 후 연구원인 김지현 박사를 포함한 연구팀은 위 발견을 포함한 초고에너지우주선 실험 결과의 천체물리학적 의미를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최근에는 초고에너지우주선이 집중돼 있는 북두칠성 부근 영역에서 처녀자리(Virgo) 은하단과 필라멘트 형태로 연결된 은하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초고에너지우주선이 처녀자리 은하단 내 천체에서 생성돼, 필라멘트를 따라 떠돌아다니다가 지구로 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초고에너지우주선의 기원을 현존하는 물리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아니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처럼 새로운 물리이론이 도입돼야 할지 아직 미지수다. 다만 현재 학술지에 게재를 준비 중인 UNIST 연구를 바탕으로 초고에너지우주선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풀리지 않은 문제를 풀어내는 게 물리학의 본질인 만큼 필자를 포함한 연구진은 미지의 우주선 탐구를 지속할 것이다. 혹시 연구 과정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세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글 류동수 자연과학부 교수
UNIST 자연과학부 물리 트랙의 류동수 교수는 지난 25년간 다양한 천체물리현상을 연구해왔다. 우주플라즈마(cosmic plasma)를 비롯해 우주 거대구조상의 초음속 운동에 의해 발생하는 충격파(shock wave), 초고에너지우주선 등이 대표적이다. 류 교수는 텔레스코프 어레이 국제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해 초고에너지우주선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