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부산에 있던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입학 2개월 만에, 휴학을 하고, 집에 내려간다고 했다. 엄마는 질문 한마디도 없이 내려오라고 했다.
엄마에게 물었다. 전문대학 졸업하고 기술자로 자동차를 고치면서 살든지, 애완동물 가게를 열든지, 아니면, 제대로 된 공부만 할 수 있는 어느 곳이든 외국으로 가서 학문을 하겠으니, 유학을 갈수 있겠느냐고.
내 부모는, 모아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유학을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나, 알아본 결과, 군복무를 하지 않고는 유학이 절대 불가능한 시대였다.
1988년 1월 19일 군입대를 했고, 30개월 뒤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군대에서 유학 서류를 처리하고 휴가 때 토플 (TOEFL) 시험도 치렀다. 영국의 수의학과는 학비가 너무 비싸서, 부잣집 자녀가 아니고는 영국사람들도 잘 못 간다. 1990년 7월 12일 제대 후 한달이 안된 8월 달에 영국 애버딘 (Aberdeen) 대학의 동물학과로 유학을 갔다.
애버딘 (Aberdeen)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학이다.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지고 외져서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합격 통보를 받은 스코틀랜드의 다른 대학들, 에딘버러, 글라스고우, 세인트앤드류대 대신 선택을 했다. 그곳의 4년은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애버딘은 아름다운 도시다. 그 곳의 유서 깊은 대학도 아름답다.
애버딘은, 학문만을 위해 있는 조그만 사원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나중에 알게 된 케임브리지나 미국 하버드대학보다도 공부환경이 더 좋은 곳이었다. 나의 예상대로, 애버딘은 훌륭한 대학 교육을 제공해 줬다.
애버딘은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인데, 영국 북해 석유생산의 핵심 도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수도이다. 북쪽에 있어서 추울 것 같지만, 춥지 않다.
1학년 때, 분자생물학 강의 시간에 윌리엄 롱 (William Long) 박사가 DNA는 나선구조를 가졌다고 했다. 나는 학문 지식을 습득할 때, 항상 검증하고 기존의 나의 지식체계와 병합되지 않으면 끝까지 파고들어 분석하고, 이해가 되면 받아들이는 것이 원칙이었다.
DNA의 나선구조가 어떻게 풀어졌다 꼬였다 하면서, 생명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지 수긍이 안됐다. 꼬인 나선을 댕겨서 푸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롱 박사에게 수업 후 찾아가서 설명을 다시 해달라고 했는데,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분자생물학과의 교수들의 전공을 확인해, 알만한 교수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서, 면담을 요청했다. 한 사람씩 만나서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제대로 내게 만족할 만한 답을 못했다는 또 한번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정직하고, 뛰어난, 내가 존경하는 교수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닐 경우, 애매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때는, 매우 중요한 것도, 예를 들면, 진화, DNA구조 같은 핵심 지식도, 나름대로의 검증을 하지 않고, 교과서에 나온 대로 ‘믿고’ 가는 것이다. 나는 과학철학에 대해 책을 읽어 왔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은 모두 위대한 순수한 학자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영국의 똑똑하고 지적인 연구자까지도 그렇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어렸을 때 많이 읽은 버트란트 러셀이나, 화이트헤드, 비트겐쉬타인, 칼 포퍼같은 과학적 철학자들은 오히려, 극소수의 예외이지, 모든 교수들이 그렇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본 칼럼은 2023년 3월 21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가 들려주는 게놈이야기(6)] 휴학과 스코틀랜드 유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