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6월 23일은 앨런 튜링(Alan Turing)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튜링은 42년이 조금 못 되는 짧은 생을 살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았던 영웅이었다.
계산과 보편 컴퓨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한 대 이상 소지하고 다니며, 일상생활의 적지 않은 부분이 컴퓨터에 의해 이루어지는 오늘날, ‘컴퓨터란 무엇인가’, 혹은 그 이전에 ‘계산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컴퓨터(computer)’, 즉 ‘계산하는 이’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계산하는 사람, 특히 미사일의 탄도 계산, 통계 계산 등의 복잡한 계산들을 나누어 맡은 뒤에 손으로 계산하는 단순 업무를 처리하던 실제 사람들을 가리켰다.
‘계산이란 무엇인가’, ‘알고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하고 만족스러운 답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자명한 일이 아니었다. 실은 튜링 이전에도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한 사람으로 알론조 처치(Alonzo Church)와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이 있었지만, 지독한 회의론자인 괴델은 처치의 답안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답안 또한 의심하고 있었다.
튜링은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이라는 이론적인 가상 기계를 제시했다. 매우 수학적이었던 기존의 두 답안과 비교할 때에, 튜링의 정의는 기계적인 모델을 통해 계산하는 인간의 사고 과정에 관한 추상화를 제공한다고 간주될 수 있었고, 그러한 특성은 결국 괴델조차 설득시켰다. 튜링의 정의는 계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답안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튜링은 튜링 머신을 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튜링 머신 중에서는 ‘보편 튜링 머신(universal Turing machine)’이라는 것이 존재함을 밝혔다. 보편 튜링 머신이란, 적당한 데이터를 주입하면 임의의 튜링 머신의 작동을 따라할 수 있는 튜링 머신을 말한다. 이는 곧 오늘날 컴퓨터의 이론적인 전신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익숙한 컴퓨터는 어떠한 프로그램을 설치하느냐에 따라 전화기가 되기도 하고, 스케치북이 되기도 하고, 게임기가 되기도 하며, 타자기가 되기도 한다. 각각의 기계들이 단 하나의 계산 기능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 즉 컴퓨터에 어떠한 입력이 주어지는가에 따라 수많은 알고리즘들을 하나의 기계 위에서 실행시킬 수 있다.
결국 이 보편 튜링 머신은 20세기 중반 이후로 전자 소자에 의해 구성된 다목적 디지털 컴퓨터라는 형태로 현실화됐다. 이러한 공헌으로 튜링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고, 그를 기리는 ‘튜링상(Turing Award)’은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이 됐다.
이차 세계대전과 암호 분석
튜링의 업적은 수학이나 컴퓨터 과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튜링은 2차 대전의 전쟁 영웅이기도 했다. 2차 대전 중에 튜링은 블렛츨리 파크(Bletchley Park)에서 독일 해군의 암호 통신을 해독하는 부서에서 일하면서, 에니그마를 비롯한 독일의 암호 체계를 분석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을 개발해서, 연합군이 독일의 군사 기밀을 파악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혁혁한 공헌을 했다.
2014년에는 그의 암호 해독 관련된 활약을 다룬,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이 개봉되기도 했다. 블렛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 팀의 업적은 전쟁의 기간을 몇 년씩 단축시켰다고 이야기될 만큼 대단한 것이었지만, 종전 직후 영국 정부에 의해 일급비밀로 분류되면서 철저히 잊혔다가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튜링 테스트와 인공지능
최근에 딥 러닝을 비롯해서 인공 지능과 기계 학습이 각광받고 있다. 튜링의 업적 중 또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을 정의하고 그 가능성을 탐구한 것이다. 지능이 해결할 수 있는 개별 문제들을 연구하는, 최근에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약한 인공 지능’과 달리, 튜링이 제시한 인공지능의 정의는 소위 ‘강한 인공 지능’, 즉 모든 면에서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계였다.
이를 위해 튜링은, 그 기계가 어떻게 내부적으로 구현되었는가와 무관하게, 그 기계의 행동 방식이 인간의 행동 방식과 유의미하게 구별될 수 없다면 그 기계가 인공지능을 달성했다고 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지극히 행동주의적인 방식으로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난제를 교묘하게 피해가는 답안을 제시한 것이나, 이 답의 가치는 다양한 인공지능 연구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꿈을 꾸는 사람
암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튜링의 발자취는 필자에게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현대적인 암호 분석에 대한 그의 중요한 기여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튜링은 계산에 대한 엄밀한 정의를 통해, 암호학의 기초가 되는 계산복잡도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다.
심지어 그의 인공지능에 대한 행동주의적 정의, 즉 내부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가와 무관하게, 두 대상이 행동 방식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일체 구별이 불가능하면 어떠한 의미에서는 둘은 동등한 것이라는 정의는, 후에 암호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구별불가능성(indistinguishability)’이 정립되는 데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다.
튜링의 컴퓨터 과학에서의 가장 큰 기여는, 미래에 대한 꿈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계산가능성과 보편 계산 기계는, 그리고 인공지능에 관한 정의는, 실제로 동작하는 컴퓨터도 아니었고 실제로 동작하는 인공지능도 아닌, 소위 ‘이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 정의들은 자동 보편 컴퓨터란 무엇이고, 그것이 현실화되었을 때 어떠한 일들이 가능할 것인지를 보여줬다. 그를 통해 인류는 보편 컴퓨터에 대한 꿈을 봤고, 그 꿈은 머지않아 구체적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과학자나 공학자가 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매우 다양하지만, 어쩌면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꿈을 꾸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물론, 튜링의 기여는 이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도 했다. 그는 초창기 컴퓨터의 구현과 응용에도 깊이 관여했고, 2차 대전에서 자신의 재능을 암호 해독에 바쳐, 연합군의 승리에 실제적인 기여를 하여 현실 세계의 일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기도 했다. 이론과 실용이라는, 어떠한 면에서는 양 극단일 수 있는 두 측면에서 똑같이 중요한 업적을 쌓은 것은 튜링의 두드러진 천재였다.
튜링은 동성애자였고,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1950년대 영국에서 재판을 받고 화학적 거세형 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2009년에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고든 브라운은 그러한 튜링의 업적을 칭송하며, 그에 대한 영국 정부의 처사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했고, 튜링 탄생 100주년을 1년 넘긴 2013년에 영국 여왕은 그를 사면했다. 사망 60년 후에 이루어진 정부의 사과와 여왕의 사면이 이미 일어난 불의를 없었던 일로 되돌리지는 못하겠으나,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이자 전쟁 영웅으로서 마땅히 받을 만한 예우였다.
글_윤아람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윤아람 교수는 암호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암호학적인 보호를 유지한 채로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동형 암호 기술’과 양자 컴퓨터가 활성화될 먼 미래에도 안전한 ‘포스트 양자 암호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