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장기로 손상된 장기를 회복시키는 꿈 같은 일이 가능해진다. 3D 프린터로 간과 폐, 위 같은 장기를 찍어내는 모습이 SF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해외 토픽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마법 같은 기술이 UNIST에서 개발되고 있다. 3D 프린터로 귀를 찍어내 생체이식에 성공한 생명과학부 강현욱 교수가 직접 ‘3D 장기 프린팅 기술’을 소개한다.
사람의 몸은 여러 종류의 장기로 구성된다. 그리고 각 장기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세포다. 결국 각 세포들이 모여서 장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위’, 섭취한 영양소를 필수 영양소로 바꾸는 ‘간’, 우리가 지구에서 원활히 호흡할 수 있게 만드는 ‘폐’와 같은 신체 기관은 모두 세포에서 시작한다.
손상된 장기 똑같이 만드는 융합 기술
장기를 이루는 세포들은 일정한 공간에 규칙을 가지고 배열된다. 이들의 상호작용과 세포 바깥 기질이 만드는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모양새는 각 장기가 제 기능을 하는 데 결정적이다. 다시 말해 세포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디에 배치되는지가 장기 기능과 직결된다. 3D 장기 프린팅 기술은 이런 세포들과 이들이 모인 복잡한 장기 구조를 모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 기술을 이용해 인공 장기를 만드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3D 장기 프린팅을 이용한 장기 재생은 다양한 분야가 융합된 기술이다. 생명공학과 의학은 물론 컴퓨터공학과 재료공학, 기계공학이 모두 필요하다. 이 기술 공정은 프린팅하려는 장기에 대한 디지털 모델의 생성부터 시작된다. 우선 컴퓨터 단층촬영과 자기공명영상 같은 의료영상장치에서 장기 구조를 파악한다. 이런 이미지 정보를 이용하면 손상된 장기에 대한 디지털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장기를 만들 바이오 잉크는 생체 조직에서 얻는다. 작은 조직 시료에서 세포를 분리하고 배양해 바이오 잉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 잉크로 얇은 두께의 2차원 패턴을 그린 다음 쌓아올리면, 디지털 모델의 형상을 가지는 3차원 세포 구조물이 만들어진다. 손상된 장기를 대체할 인공장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3D 장기 프린팅 기술, 어디까지 와 있을까?
3D 장기 프린팅 기술에 관한 분야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더 우수한 프린팅 시스템과 공정을 개발하는 연구와 이를 이용해 인공장기 재생과 생명공학 분야에 적용하는 연구다.
장기 프린팅 기술은 컴퓨터로 설계한 3차원 구조물을 세포 손상 없이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프린팅 과정에서 세포에게 주어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도 정밀한 세포 구조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목표 조직이나 장기에 따라 필요로 하는 구조가 크게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개별 공정 연구 역시 필요하다. 혈관 재생은 피의 유동을 위한 관 형상의 제작이 필요한 반면 근육의 경우에는 실 다발의 형상을 만들어야 한다. 연구자들은 더 정밀한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시스템 기술의 개발 그리고 목표 장기에 따라 필요한 공정 기술의 개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인공 장기 재생을 위한 다양한 연구로 이어진다. 단순하게는 연골, 뼈, 피부 등 의 간단한 조직을 재생하려는 연구부터 귀, 심장 및 신장과 같은 복잡한 장기를 구현하려는 시도도 점차 결실을 맺고 있다. 간단한 조직의 경우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됐으며, 현재 일부 기관에서는 이를 임상에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신약 검증을 위한 인공 생체 모델도 3D 장기 프린팅 기술로 큰 변화를 겪을 예정이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효능과 안전성 등을 검정하는 데 널리 이용되는 방법인 동물실험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동물실험은 윤리적인 면이나 비용 측면에서 커다란 논란거리였다. 하지만 인공 장기 프린팅 기술로 제작되는 생체 모델은 동물실험 없이 신약의 독성과 효능을 평가할 수 있어 새로운 대체재로 각광받고 있다.
불치병 치료, UNIST에서 시작하다
대부분의 장기 프린팅 기술은 임상에 적용할 수 없는 작은 크기의 조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최근 필자의 연구팀과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미국의 웨이크 포레스트 재생의학 연구소가 공동 연구한 결과, 임상 적용이 가능한 세포 구조체를 구현할 하이브리드 장기 프린팅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연골 조직으로 구성된 생체 귀를 찍어냈고, 동물실험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현재는 미세혈관 조직 재생에 관한 기술을 비롯해 바이오 잉크와 프린팅 헤드 모듈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더 복잡한 장기인 췌장과 심장, 척수신경으로 응용할 방법은 없는지도 살피고 있다.
필자는 이 연구들이 모여 치료를 포기해왔던 불치병들을 고치고 희망을 빼앗긴 환자들이 밝은 미래를 꿈꾸게 되길 바란다. 3D 장기 프린팅 기술이 진화할수록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미래가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험이 성공할수록 사회에 공헌할 기회도 커진다는 기대감으로 UNIST 연구진 역시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글 강현욱 생명과학부 교수
강현욱 교수는 UNIST에서 첨단 장기 프린팅 기술을 개발하고 및 이를 이용한 인공 장기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여러 종류의 세포로 이뤄진 인체 조직도를 한 번에 인쇄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