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 “왜?”라고 물으며 답을 찾아나간다. 130억 년 전 우주의 탄생도, 45억 년 전 태양 주위를 불규칙하게 맴돌던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지구’로 이어진 것도 이 질문에서 얻은 답들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주가 진짜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고 있는 연구진이 UNIST에도 꾸려졌다. ‘고에너지 천체물리 선도연구센터’라는 이름으로 뭉친 물리학자들을 진두지휘하는 인물, 자연과학부 류동수 교수를 만났다.
“기초과학은 공학이나 응용과학의 밑바탕이 되는 순수과학 분야지요. 학생 시절부터 저는 자연과학의 기초 원리와 이론에 대해 공부한다는 자체를 흥미롭게 생각해왔습니다.”
류동수 교수는 기초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이치를 척척 깨달았던 건 아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재밌고 호기심이 생겼다. 특히 그는 우주의 근원을 파고드는 천문학의 질문에 귀 기울이곤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확대돼 ‘우주는 무엇인가’로, 다시 ‘우주의 숱한 물질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천체물리학자, 류동수를 만들었다.
별처럼 반짝이는 연구를 좇아서
류동수 교수는 25년간 천체물리현상을 연구해왔다. 그에게 천체물리학은 다른 일을 하는 게 비효율적이라 여길 만큼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깊게 파다 보니 천체물리학 현상을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학문적인 성과도 뒤따랐다. 그런 즐거움이 연구를 지속해온 힘이 됐다.
류동수 교수가 본격적으로 천체물리학 이론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그가 미국 텍사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한국의 과학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특히 제대로 된 천체 관측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실험 장비가 없더라도 이론 연구는 계산으로만 할 수 있으니까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처럼 과학 연구와 장비에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아마 제 연구 방향도 바뀌지 않았을까요?(웃음)”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선택은 결국 UNIST에도, 한국 과학계에도 큰 축복이 되었다. 우주 플라즈마(cosmic plasma)를 비롯해 우주 거대구조상의 초음속 운동에 의해 발생하는 충격파(shock wave), 초고에너지우주선 연구 등 그가 그동안 이뤄낸 연구 성과들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텔레스코프 어레이 국제공동 프로젝트도 함께하고 있다. 전 세계 연구진이 참여한 초고에너지우주선의 기원을 찾는 연구에 한국 대표로 참여한 것. 거대 망원경으로 초고에너지우주선을 관측하는 실험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면 ‘우주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한 발짝 다가가게 된다.
직접 만질 수 없는 현상 살피는 ‘천체물리학’
“천문학 분야에는 천체를 관측하는 연구자도 있고, 저처럼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론 연구자들은 관측 결과물을 해석해야 하는데, 이때 물리학이 많이 쓰입니다.”
천체물리학은 별, 은하, 우주에서의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관측과 이론을 아우르는 이 학문에서 류동수 교수는 이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는 물리학 이론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천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동안 우리 은하계 바깥에 있는 은하 이상의 큰 규모의 천체인 ‘우주 거대구조’를 연구해왔고, 최근에는 수천 개의 은하로 이뤄진 ‘은하단’의 현상들도 살피고 있다.
“지구가 아닌 천체들이니 환경도 달라집니다. 어떤 곳은 밀도와 온도, 압력 모두 높죠. 은하단처럼 밀도는 낮되 온도가 높은 환경도 있고요. 환경이 달라지면 물리 현상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천체물리학에서는 그 차이를 분석하고 해석하죠.”
류동수 교수는 우주에서 나타나는 자기장, 고에너지 입자, 충격파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주의 비밀을 한꺼풀 벗겨내는 게 그의 목표다. 최근에는 ‘고에너지 천체물리학’이라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우주에서는 고에너지 물리현상에 의해 전파, 엑스선, 감마선 등 복사(radiation)가 만들어집니다. 복사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열에 의해 들떠서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현상을 말해요. 이 현상을 관측하고 생성 원리를 탐구하면 ‘우주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해답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태양에서 받는 빛도 복사의 일부분이다. 파장이 긴 적외선, 파장이 짧은 자외선,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모두 복사의 형태로 지구에 도착한다. 물리적으로 보면 이런 것들은 모두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제한적일 뿐이다.
“고에너지 천체물리학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 엑스선, 감마선 등으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많은 비밀을 품고 있죠. 저를 비롯한 천체물리학자들은 이렇게 숨겨진 비밀을 쫓아 우주의 기원을 밝히고 있어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
천체물리학에서는 어떤 천체를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연구 방향이 달라진다. 류동수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있는 고에너지 천체물리 선도연구센터에서는 두 가지를 선택해 집중 연구할 계획을 갖고 있다.
“저희 센터는 크게 ‘밀집성(compact star)’과 ‘은하단(cluster of galaxies)’의 천체물리학 연구를 수행하려고 합니다. 이 연구를 하면서 국내에 있는 거대장비를 활용한 실험 연구도 병행할 계획이에요.”
밀집성은 내부 물질의 밀도가 높은 항성의 최종 진화 형태를 의미한다. 중성자별과 백색왜성, 블랙홀이 밀집성의 대표적인 예다. 이 별에 주목하는 이유는 밀도와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 고에너지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은하단은 밀도가 낮지만 온도가 높아 역시 고에너지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연구진은 국내 거대장비를 활용한 실험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국가 차원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포항가속기연구소의 ‘4세대 가속기’와 2021년 대전에 세워질 예정인 ‘중이온 가속기’가 대표적이다. 가속기는 어떤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장치다.
“4세대 가속기나 중이온 가속기로는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을 만들 수 있어요. 이 장비들을 활용하면 실험실에서 천체 환경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처럼 실험실에서 천체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를 ‘실험천체물리학(laboratory astrophysics)’이라 부릅니다.”
센터가 계획한 밀집성・은하단 연구와 실험천체물리학 연구의 목적지는 같다. ‘우주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우주를 이해하고 기술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우주관도 때마다 바뀌었죠. 저와 센터가 하는 연구도 결국은 이 질문에 답을 구하는 거예요. 우주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이지요.”
우주는 아무리 상상해도 모자랄 만큼 많은 질문들을 쏟아낸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온갖 과학이론과 실험 장비를 동원해 천체물리학을 연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류동수 교수는 아직 못 찾은 해답들을 쫓느라 눈을 반짝이고 있다. 그와 UNIST 연구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밝혀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을 것이다. 류 교수의 반짝이는 두 눈을 주목해보자.
About Center for High-Energy Astrophysics
UNIST 고에너지 천체물리 선도연구센터는 우주의 고에너지 천체 현상과 그 물리과정을 연구한다. 류동수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있으며 자연과학부 물리학 트랙의 여러 교수들이 연구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센터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밀집성과 은하단에서 나타나는 고에너지 천체 현상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4세대 가속기, 중이온 가속기 등 국내 거대 장비를 활용해 실험천체물리학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센터는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 주관의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연구센터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앞으로 7년간 최대 169억 5,000만 원의 연구비를 확보했으며, 올해 11월말 새로 지은 건물에 연구실이 마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