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양지은 박사는 2009년 서울에서 울산으로 향했다. 고향 울산에 세워진 UNIST의 가능성을 믿고, 이곳에서 꿈을 꾸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환경이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UNIST에서 멋지게 성장한 그녀는 이제 미국이라는 넓은 바다로 나가 그래핀 연구자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사이언스(Science)에 그래핀 관련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제1저자는 2015년 2월 UNIST 에너지공학과를 졸업한 양지은 박사다. 양 박사는 현재 미국 럿거스대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논문은 그녀가 대학원 과정에서 진행하던 그래핀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실이다.
‘꿈의 물질’이라 불리는 그래핀은 대량생산이 어려워 상용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양 박사는 이를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전자파(microwave)로 해결했다. 고품질 산화그래핀을 만드는 까다로운 공정을 몇 초 동안 전자파를 쪼이는 기술로 대체한 것이다.
모 아니면 도, UNIST에 올인하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던 건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2009년에는 석사 과정만 마치고 취업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2009년 입학한 UNIST 대학원에서 그녀는 목표를 ‘연구자’로 바꿨다.
“모르면 몰라도 이제 막 개교한 UNIST에서 연구자로서 첫 발을 디딘 1기와 2기 동문들은 진학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그때 UNIST에 진학하는 일은 도박에 가까웠거든요.”
개교 당시 UNIST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인지도 낮은 신생대학교라는 어두운 면과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곳이라는 밝은 면이 공존했다.
“아무것도 없는 실험실을 꾸리고, 연구를 위한 체계를 잡아나가는 일까지 모두 새로 시작해야 했어요. 힘들긴 했지만 UNIST의 가능성을 믿고 입학한 제게 학교는 완벽하게 보상해줬습니다. 하고 싶은 연구는 거의 다 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았죠.”
양 박사는 최신 장비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UNIST의 연구 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매력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석사를 마치고 취업하려던 생각을 접고 박사 과정까지 밟게 했다.
힘들어도 다시 한 번!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럿거스대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UNIST에 입학할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굳이 힘들게 해외에서 연구하지 말라고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UNIST를 선택했던 그때처럼 다시 한 번 모험을 선택했다.
“저를 말리던 사람들의 말처럼 이곳 생활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대학원 과정에서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때는 연구의 수치와 결과를 중요하게 여겼다면, 지금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질문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박사 후 연구원은 학생 때와 달라서 모든 연구의 시작이 토론이다. 말로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는 크게 흥미가 없던 그녀에게 어려운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자신의 연구와 생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됐다.
그러다보니 덩달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있다. 비단 연구와 실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럿거스대의 실험실에는 각국의 연구자들이 모여있다. 이들과 소통하는 동안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넓어졌다.
UNIST와 함께 시작해 시나브로 성숙한 연구자가 된 양 박사는 후배들에게 ‘진득하게 한 분야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이거 조금, 저거 조금 하다가 관두는 일들이 참 많아요. 그러면서 ‘이건 내 적성에 안 맞아’하고는 돌아서기 쉽죠. 그러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얻기 힘들어요. 공부도 연구도 마찬가지죠. 저도 한때는 적성 타령 엄청 했어요. 화학이 너무 싫었거든요.”
화학이 싫었던 그녀지만 쉽게 포기 하지 않았다.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이왕 시작한 거 딱 10년만 이 분야에 있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매달려 보지도 않고 돌아서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양지은 박사는 ‘후배들도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꾸준히 도전하길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