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UNIST에서 하이퍼루프(Hyperloop)를 다루는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이 심포지엄은 최근 다시 각광받는 하이퍼루프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또 UNIST가 하이퍼루프 관련 연구에 동참한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자리기도 했다. 교통 패러다임의 전환점으로 여겨지는 하이퍼루프 연구에 UNIST가 참여하게 된 의미를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해 본다.
산업혁명으로 동력원이 개발된 이후 200년간 교통수단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특히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바퀴는 차량과 철도 등의 육상 교통수단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현재 바퀴가 구현할 수 있는 속도는 그 기술개발의 임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하이퍼루프는 바로 ‘이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자’는 것이다.
기차가 속도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데는 두 가지 저항 요인이 있다. 바퀴와 레일 간의 접촉에 의한 ‘마찰력’과 고속에서 급격히 증가하는 ‘공기에 의한 저항력’이다. 둘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면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접촉 마찰력을 줄이려면 차량을 지면에서 띄워야 하고,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차량은 아진공(진공에 가까워 공기저항이 거의 없는 상태) 튜브에서 이동해야 한다. 이와 유사한 개념들은 이미 오랜 전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많이 소개됐다. 하지만 관련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13년 엘론 머스크가 매우 실질적인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한 제안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 덕분이다.
현재 북미의 세 개 기업과 유럽을 포함한 여러 대학 등에서 하이퍼루프 실현을 위한 활발한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우리나라에서도 UNIST가 적극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국형 하이퍼루프, ‘유루프(U-Loop)’를 개발하라
하이퍼루프 개념을 실현시키려면 매우 다양한 기술적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체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공학과 응용과학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술들이 융합돼야 한다. 이는 진정한 학문 융합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하이퍼루프 연구는 각 전공 분야 요소기술의 성공뿐 아니라 각 기술을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기술의 융합체인 하이퍼루프 기술이 실현되면 경제적인 이익을 볼 수 있다. 현재 철도 건설 방식에 비해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정도와 에너지 사용량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직접 사용해 전력을 얻을 수 있고, 스마트 그리드의 개념도 초기 설계부터 적용 가능하다.
이에 UNIST는 5년 동안 14억 원을 투입해 한국형 하이퍼루프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를 ‘유루프’라 명명했다. UNIST 연구진은 먼저 크게 다섯 개 정도의 요소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기계공학, 전기, 통신, 디자인공학부의 전공 교수들이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각 분야에서는 차량의 공기역학과 안정성 제어, 모터에 의한 차량 추진 및 전력 공급, 고속 이송체의 차세대 통신 문제, 차량 외형 및 승하차 개념 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다.
이제 연구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성과에 대해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미래 친환경적 기술의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연구가 융합되는 만큼 다양한 산업에 개발된 요소기술을 활용할 가능성도 높아 기술 개발의 파급효과도 기대된다.
패러다임 전환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
19세기 중반 영국은 ‘적기조례(Red Flag Act)’라는 새로운 법령을 선포했다. 적기조례는 세계 최초의 교통법으로 발명품인 자동차의 운행을 제약하는 법이다. 새롭게 등장한 증기기관 자동차의 발명으로 위협을 느낀 마차 운행 업자와 마부를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자동차는 마차보다 느리게 달리도록 속도를 제약했고, 자동차 앞에 항상 마차가 붉은 깃발을 들고 운행해야 하며, 증기자동차는 말이 놀라지 않도록 증기를 내뿜으면 안 된다는 법안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기술개발을 탄압한 대표적인 사례로 뽑히는 이 악법은 결과적으로 증기기관 발명의 원천 국가였던 영국을 자동차 산업에서 도태시켰다.
새로운 교통 체계의 등장은 일상생활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혁명적인 일이다. KTX 건설이 울산 시민의 생활 반경을 얼마나 바꿔 놓았는지 안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지금 시작하는 하이퍼루프 연구가 대중에게는 단순한 호기심이 될 수도 있고, 기존의 교통체계 옹호론자들에게는 또 다른 증기자동차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데는 항상 타당성과 효용성에 대한 옹호와 거부감, 찬성과 반대가 공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연구하고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우선 기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지금 시작한 UNIST의 연구는 차세대 초고속 이송수단 기술에 대한 검증을 체계적으로 완성해 가는 것이며, 이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다져가는 과정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 미래의 일상을 혁신적으로 바꾸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감도 항상 함께할 것이다.
글 이재선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
이재선 교수는 열전달 현상을 기반으로 한 열유체 시스템의 개발 및 각 요소기기들의 성능 향상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포함한 다양한 에너지원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한 시스템 설계와 개선 프로젝트가 주요 과제다. 2016년부터 시작된 UNIST 하이퍼루프(U-LOOP) 연구개발팀의 연구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