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이후 차세대 에너지 연구가 줄을 잇는다. 이 가운데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가 강력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에 진행하던 차세대 에너지 연구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데, 과연 그럴까? 페로브스카이트는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자.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태양전지는 대부분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다. 실리콘은 모래의 주성분인 실리카(SiO₂)에서 산소를 떼어내 만든 것. 하지만 이를 만들려면 1,000℃ 이상의 고온이 필요하고 공정이 복잡해진다. 반면 2000년대 말 등장한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전지 연구에 큰 충격을 던졌다. 실리콘 태양전지가 가진 단점을 뛰어넘을 만한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페로브스카이트의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한 걸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UNIST 연구진을 만났다.
페로브스카이트, 차세대 에너지 연구의 희망?
“페로브스카이트는 두 종류의 양이온과 한 종류의 음이온이 결합해 만들어진 3차원 결정 구조입니다. 그동안은 음이온 자리에 산소가 들어간 형태의 페로브스카이트를 주로 연구해왔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산소 자리에 할로젠화물(halide)이 들어간 페로브스카이트 형태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할로젠화물은 반응성이 커서 화합물이나 다른 원소와 결합해도 안정적인 물질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양이온 두 개 자리에 무기물(납과 같은 금속)과 유기물이 들어가고, 음이온 자리에 할로젠화물이 들어간 형태가 바로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이하 페로브스카이트)’다.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석상일 특훈교수는 UNIST 페로브스트로닉스 연구센터에서 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했다.
페로브스카이트 구조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모두 하나의 결정에 들어간다. 덕분에 두 물질의 장점을 모두 가질 수 있다. 게다가 기존의 태양전지 연구와 달리 고온에서 열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용액 속에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구성된 출발 물질을 섞어 코팅만 하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실리콘 태양전지에 비하면 제조 공정이 가히 혁신적이다. 그만큼 단가도 낮아져 실리콘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확장성이 좋다는 장점도 있다. 실리콘 태양전지가 단일 물질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얼마든지 다른 조성의 물질로 합성할 수 있다. 반도체 특성도 지니고 있어 반도체가 필요한 기기에도 적용 가능하다. 광흡수 계수가 높아서 소량만 사용해도 태양빛을 충분히 흡수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광전효율’이 높다. 광전효율은 말 그대로 빛을 전기로 전환할 때의 효율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광전효율 20%는 받은 빛을 100으로 봤을 때 20만큼 전기로 바꿔 쓸 수 있다는 뜻이다. 태양전지판을 예로 들어 광전효율을 설명하면 이렇다.
빛이 태양전지판으로 흡수되면 광전효과에 의해 전자가 움직이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가라앉은 전자가 튀어나오는데, 이 전자를 모으면 전기 에너지가 된다. 일반적으로 튀어나온 전자는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어 더 이상 전기를 생산하기 어려워지므로 이들이 재결합하지 않게 회로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광전효율은 튀어나온 전자들을 모아 전기를 얼마나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예요. 최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광전효율이 실리콘 태양전지에 육박하는 22%를 달성했어요.”
이 분야 최고는 ‘대한민국 UNIST’라는 자부심!
“실리콘 태양전지가 전체 태양전지 산업에서 90%가량 점유하고 있지만 생각만큼의 효과를 얻진 못했어요. 제작 공정이 복잡하고, 가격이 비싸니까요. 그러면서 관심이 페로브스카이트로 옮겨갔어요. 단기간에 광전효율을 실리콘 수준으로 끌어올린 데다 공정도 간단하지요. 가격도 경쟁력이 있고요.”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서관용 교수는 ‘아주 간단하고 값싸게 만들면서도 효율 높은 태양전지’를 만드는 게 핵심이라며, 이 부분에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가장 앞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로 꼽힌다.
“페로브스카이트를 태양전지에 활용하는 연구는 2009년 이후 시작됐어요. 이 연구에 가장 열정적이고 성과가 좋은 건 대부분 한국 연구자들이에요. 연도별 최고효율 기록도 대부분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최고 수치도 석상일 교수님이 가지고 있죠.”
‘팔방미인’ 페로브스카이트, 또 어디에 쓸까?
페로브스카이트는 유연한 성질을 가졌고, 얇은 두께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 실리콘과 달리, 여러 곳에 활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LED(light emitting diode, 발광 다이오드), 에너지 하베스팅,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페로브스카이트를 적용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신소재공학부 송명훈 교수에게 들을 수 있었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햇빛이나 진동, 열, 바람처럼 자연 속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서 수확하는 기술을 말해요. 그러려면 열전소자, 압전소자, 정전소자 등이 필요한데 여기에도 페로브스카이트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센서나 LED 등에도 마찬가지고요.”
송명훈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구조를 LED에 활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LED는 갈륨비소(GaAs) 등의 화합물에 전류를 흘려 빛을 내는 반도체 소자를 말한다.
“최근에는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 유기발광 다이오드)와 퀀텀닷(quantum dot,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수 nm의 반도체 결정)을 이용한 LED 연구가 활발해요. 색 재현성이 좋아 디스플레이 제품을 만들 때 이용되는 퀀텀닷은 공정이 까다롭습니다. 이를 해결한 대안이 바로 ‘페로브스카이트 LED’입니다.”
페로브스카이트를 적용한 LED는 제작 공정이 간단하고, 색 재현성도 높게 유지할 수 있다. 201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페로브스카이트 LED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다. 하지만 발광 효율을 높이면서도 안정적인 페로브스카이트의 잠재력을 파악한 세계의 연구자들이 이 분야로 뛰어들고 있다.
‘이것’만 풀면 새로운 전자기기 시대가 열린다
그렇다면 페로브스카이트는 언제 사용할 수 있을까?
“상용화 시기를 단언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몇 가지만 보완하면 상용화 전망이 아주 밝습니다.”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박혜성 교수는 수분에 취약한 부분을 페로브스카이트의 첫 번째 보완점으로 꼽았다. 상업적으로 태양전지를 사용하려면 습기와 온도에 강해야 한다.
그런데 페로브스카이트는 습기에 노출될 경우 결정구조가 변하면서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구조 자체의 불안정성도 해결할 과제다.할로젠화물 같은 물질이 결합되지 못하고 빠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보완해야 높은 광전효율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넓은 면적에 사용할 경우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도 차차 개선할 점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납과 같은 중금속을 대체할 물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페로브스카이트 구조에는 납이 들어가는데, 이 물질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문제는 납이 독성을 가진 물질이라는 데 있다. 납만큼 좋은 효율을 보이면서 독성 없는 물질을 찾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페로브트로닉스’와 함께하는 미래 사회
미래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될 거라고들 한다. 사물에 센서를 붙여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지금도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고, 각종 전자제품에 센서를 붙여 데이터를 주고 받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미래에 페로브스카이트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전자기기를 항상 곁에 두고 실시간으로 사용하게 될 거예요. 그러려면 별도로 충전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쓸 수 있어야 하죠. 이때 가장 좋은 전력공급원으로 꼽히는 게 태양전지예요.”
사물인터넷 시대의 핵심은 센서다. 여기에 동력을 공급하기 가장 적합한 게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라고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김진영 교수가 설명했다. 이 태양전지는 조금 어두워도 좋은 효율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데다 아주 얇게 만들어도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영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센서나 휴대용 전자기기처럼 작은 장치에 붙이기 적합하다”며 “언제 어디서든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고 활용범위도 넓어서 사물인터넷 시대에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UNIST는 페로브스카이트를 연구하는 이들을 모아 연구센터를 꾸렸다. 석상일 교수가 센터장을 맡은 이곳은 ‘페로브트로닉스(Perovtronics) 연구센터’다.
“페로브트로닉스는 페로브스카이트와 옵토일렉트로닉스(opto-electronics)의 합성어입니다. 새로운 물질이나 개념이 생기면 단어 끝에 ‘트로닉스(~tronics)’를 붙여 새로운 분야 개척의 뜻을 강조하곤 해요. 새 이름을 붙인 만큼 페로브스카이트를 활용한 도전적인 연구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관용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연구를 생물에 비유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결정 구조이지만, 어떻게 성장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것. 페로브스카이트는 과연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까? 확신하긴 어렵다. 다만 치열하게 연구하는 UNIST 연구진을 보면서 미래가 밝다고 짐작할 뿐이다. 이들이 말하는 ‘페로브트로닉스’는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여는 기술이 될지 모른다.
About Pperovtronics Center
페로브트로닉스 연구센터는 ‘페로브스카이트’라는 공통분모로 모인 연구 집단이다. 석상일 교수를 필두로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와 신소재공학부, 자연과학부(화학과) 교수 등이 합류했다. 이런 다학제적 구성이 필요한 건 연구대상인 ‘페로브스카이트’가 그 자체로 융합 물질이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사물인터넷 시대에 발맞춰 고효율의 페로브스카이트 소재 및 소자의 기술을 개발하고, UN 주관 COP21(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결과에 따라 CO₂를 감축하기 위해 차세대 에너지를 연구할 계획이다. 태양전지뿐 아니라 LED 연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10년 연구수행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페로브스카이트 기술을 활용한 디바이스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공간은 내년 상반기 제2공학관에 자리 잡을 예정이다.
연구진의 진정한 목표는 페로브스카이트를 UNIST와 울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드는 데 있다. 울산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에는 많은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앞으로 페로브스카이트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로 거듭나며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