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교통체증, 생태계 보존, 공동체 협력, 뉴스 분석, 법률 서비스…. 수학은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학문이다. 사회현상에 나타난 규칙이나 구조적 특징을 수학으로 파악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공식이나 숫자 계산만이 아닌, 세상의 문제를 풀어내는 반짝이는 수학을 만나보자. <편집자 주>
수학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다. 숫자 계산이나 공식은 수학의 일부이며, 아직도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많은 수학자들이 있다. 요즘은 어떤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수학이 다양하게 응용된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수학이 응용되는 분야를 소개하려고 한다.
응용수학자로서 필자가 정의하는 수학은 ‘문제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현상 안에 있는 어떤 규칙이나 구조적 특징들을 알아내는 문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론을 개발하는 게 수학이라는 학문이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시대에서 문제를 디자인하는 수학자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필자가 진행한 몇몇 연구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수학자의 역할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네트워크 이론’으로 소방서 최적지 찾아
필자는 사물들의 관계를 점과 선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이론’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했다. 교차로를 점, 연결 도로를 선으로 삼아 구성한 교통 네트워크 활용하면 도로의 구조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정체 지점을 알아낼 수 있으며 실제 교통 정보 등을 고려하면 관공서 위치 등이 최적지인지도 따져볼 수 있다.
화재가 날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불이 어디서 날지 미리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화재 피해를 줄여줄 소방서 위치는 따져 볼 수 있다. 화재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건 소방차가 최단시간에 화재 장소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서울 지역의 소방서 위치를 교통 네트워크 위에 넣어보자. 그런 다음 소방차가 특정 장소에 최단시간에 도착하는 함수를 구성해 확인하면, 많은 소방서가 최적지가 아닌 곳에 자리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울산에는 남구 매암동과 동구 화정동을 잇는 다리가 하나 있다. 1.8km 길이의 국내 최장 현수교인 ‘울산대교’다. 2년 전 개통된 울산대교를 두고도 수학적 연구를 진행했다. 이 다리가 개통하기 전과 후 도로의 구조적인 변화를 살피고, 교통 네트워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울산대교로 분산되는 차량이 늘어나 울산 교통의 기본 축들이 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왕따 문제도 수학으로 풀 수 있다
왕따 같은 사회적 고립 문제도 수학적인 모형으로 풀 수 있다. 흔히 왕따 현상은 성격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만들어내는 현상이라 여기기 쉽다. 그러나 개인이나 집단의 관계 설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수학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점과 선이라는 간단한 구성으로 이뤄진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만족스럽게 교감할 때 집단이 생성되고,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집단은 성장한다. 모두가 집단의 현재 상태를 만족하면 성장을 멈추고 평형상태가 된다. 이 점을 이용해 개인 간의 상호만족을 느끼는 함수를 설계하면 왕따 문제를 푸는 함수를 만들 수 있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각 개인이나 집단은 게임에서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으려 한다. 왕따 문제의 함수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자신의 만족감이 최대가 되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 든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집단이 성장하고 결국에는 평형상태에 이른다. 이 모형을 분석해보면 왕따는 집단의 성장이 멈춘 평형상태에서 나타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주제에 대한 토의에서 친한 친구로 이뤄진 그룹과 상하 구분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인 그룹의 분위기는 다르다. 토의를 이끌어가는 주체나 방향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관계 형성에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구조적 특성도 왕따 문제를 푸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UNIST 자연과학부 수리과학 트랙에서는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집단간/내 경쟁과 사회적 적대 형성’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생태학에서 많은 동·식물의 공존도 평형상태를 이뤘다고 설명할 수 있다. 복잡한 먹이사슬로 얽혀져 서로 경쟁하지만 결국은 평형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경쟁은 종 내부와 외부에서 모두 일어난다. 두 가지 평형이 모두 이뤄지는 구조를 관찰하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경제활동도 풀어볼 수 있다.
다양한 경제주체들은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환경에서 경쟁하거나 타협하면서 공존한다. 이때 벌어지는 경쟁구조의 변화 등도 마찬가지로 수학적 모형으로 풀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도 수학적인 연구를 통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수학으로 디자인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수학은 매우 중요하다. 선진국들은 ‘산업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학문 생태계를 만들며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제 수학은 현상에 대한 디자인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현장에 직접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UNIST 벤처기업인 ‘(주)코어닷투데이(Core.Today)’도 이런 흐름에 맞춰 작년 3월 설립됐다. 애초 연구는 넘치는 정보 중 중요한 사실만 알려주고자 한글 뉴스에 대한 요약기술(특허 등록)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가 뉴스의 분류와 군집화, 확산, 생성 등으로 이어지면서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 코어닷투데이는 인공지능 법률 서비스, ‘로우봇(Lawbot)’을 개발 중이다. 변호사가 변론을 위해 사건과 관련한 자료와 판례 정보 등을 찾아서 활용할 때 필요한 검색 서비스다. 비슷한 사건에 대한 판례와 변론 논리를 정확하게 안다면 효과적인 변호가 가능하다. 로우봇은 의미 기반의 검색 서비스를 제공해 누구나 법적인 사실을 검색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이 기술은 딥러닝(Deep Learning) 같은 인공지능 데이터 처리 기술 위에 수학적인 방법론을 제공한 방식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똑같은 재료로 같은 요리를 만든다 해도, 요리사나 조리법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지식과 데이터가 넘쳐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누구의 창의력이 발휘되는지, 어떤 수학적인 디자인이 쓰일지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맞게 될 것이다. UNIST 수리과학 트랙에서 수학으로 세상을 풀어가는 즐거운 프로젝트를 함께 할 여러분을 기다린다.
글 장봉수 자연과학부 교수
장봉수 교수는 산업 빅데이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회적 문제나 관계를 수학적 방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UNIST 수리과학트랙 초대 트랙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다양한 산업에서 응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등 산업수학 분야 대표적 석학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