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UNIST 학위수여식은 떠들썩했다. UNIST 박사로서 한양대 교수에 임용된 최효성 동문 때문이다. 만 서른의 나이, 비수도권 출신, 국내 학위라는 불리한 꼬리표를 달고도 유수 대학에 안착한 최효성 교수. ‘스펙’이 아닌 ‘실력’으로 성공한 그가 사회에 주는 울림도 적지 않았다. 3년차 교수로 맹활약 중인 자랑스러운 동문을 만나러 한양대로 향했다.
어린이 최효성에겐 장난감이 필요 없었다. 어떤 물건이든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갔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물으면 꼬박꼬박 ‘과학자’라고 썼다. 무엇이든 원리를 파악해서 다시 적용해 보는 게 좋았으니 다른 꿈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과학자를 꿈꾸던 청소년 최효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태양 에너지’였다. 햇빛 한 줌을 모아 전기를 만들면 어두운 방을 밝히거나, 공장을 돌리거나, 기차를 움직일 수도 있다니. 그보다 멋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태양빛이나 태양열이나 태양광을 다룬 기사를 맞닥뜨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태양 에너지를 다루고 싶던 그는 화학을 전공으로 삼고 부산대로, 광주과학기술원(GIST)으로 진학했다. 석사과정을 보냈던 GIST에선 태양전지를 만드는 물질에 대해 연구했다. 그런데 직접 태양전지 소자를 만들지 않고 물질만 살피니 한계가 있었다. 소자에서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는 게 물질 탓인지, 소자 자체의 결함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평생 스승, 김진영 교수와 만나다
“혼자서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김진영 교수의 세미나를 듣게 됐어요. 마침 김 교수님도 태양전지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셨죠. 물질과 소자를 같이 연구하면서 문제를 풀 수 있겠다 싶어 김 교수님의 연구실 연구원으로 지원했어요.”
최 교수가 김진영 교수를 만난 해는 2009년. UNIST가 개교한 시점이었다. 주변에서는 더 안정적이고 편하게 연구할 수 있는 곳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이제 막 문을 연 학교는 틀림없이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박사과정을 시작하진 않고 연구원으로 참여했죠. 그런데 6개월을 보내면서 걱정은 사라지고 대신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UNIST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김진영 교수 아래서 연구를 시작한 최효성 교수는 박사과정 중에만 10여 편의 굵직한 논문을 발표했다. 제1저자 기준으로 박사과정 중에는 3~4편의 논문만 써내도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최 교수는 남들보다 3배 많은 실적을 보인 것이다.
“비결을 꼽으라면 UNIST의 연구 환경이죠. 장비가 없으면 기기 예약부터 분석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돼요. 그러면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UNIST는 연구지원본부(UCRF)에 모든 장비를 모아 뒀어요. 누구나 쉽게 예약하고 빠르게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죠. 그러다 보니 많은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어요.”
모든 게 연구자 중심으로 갖춰진 UNIST에서 좋은 성과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박사과정에 있던 최 교수뿐 아니라 석사과정 연구원들도 큰 논문을 발표하면서 실적을 쌓았다. 이는 연구 경력이 짧은 최 교수를 한양대 교수로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개교 6년차 대학서 교수가 나왔다
“한양대 임용은 뜻밖의 일이었어요.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도 연구원으로 몇 년씩 경력을 쌓는 게 일반적이에요. 저도 200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앨런 히거(Alan Jay Heeger) 교수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 중이었죠. 우연히 임용공고를 보고 경험 삼아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한 거예요.”
보통 교수에 임용되려면 박사 후 연구원으로 3년 이상 일한 경력이 필요하다. 경력을 갖췄다고 해도 서울 내 대학 교수로 임용되기는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당시 1년차 연구원인데다 역사가 짧은 UNIST 박사인 최 교수도 큰 기대 없이 서류를 넣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에도 합격이었다.
임용 이후 확인해 보니 한양대 화학과에서 BK21플러스사업에 도전하기 위해 연구 실적이 높은 교수를 찾고 있었다. 최 교수는 지원자 중 가장 어렸지만 연구 실적이 좋아 뽑혔다고. 최 교수는 자신을 성장시켜 준 김진영 교수와 UNIST에 고마움을 표했다.
“박사 3년차에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했는데, 이때 느낀 점이 많습니다.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더라고요. 그때 키운 생존력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이런 경험이 가능했던 건 김 교수님과UNIST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한양대에서 ‘청출어람’ 꿈꾼다
만 서른의 나이로 자신의 연구팀을 꾸리게 된 최효성 교수. 하지만 본격적으로 실험실을 갖추고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최소 6개월이 필요했다. 잘못하면 실험실 준비만 하다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때 김진영 교수가 다시 제자에게 도움을 줬다. 실험실이 완성될 때까지 UNIST에 와서 연구하라고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김 교수님은 저와 연구 분야가 같습니다. 사제 간에 같은 걸 연구하면 배타적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어요. 함께 연구하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분쟁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교수님은 오히려 마음껏 연구하라고 자신의 연구실을 열어 주셨어요.”
교수가 돼 돌아온 제자는 스승과 함께 연구에 몰두해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수명을 3배, 효율을 10% 이상 향상시킨 신소재를 개발했다.
“교수님이 제게 그랬듯 저도 학생들에게 좋은 스승이자 선배, 동료가 되고 싶어요. 제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주었던 김진영 교수님께 배운 게 너무나 많습니다.”
현재 최 교수의 바람은 ‘자신만의 연구’를 꿈꾸는 학생들을 만나 함께 연구하는 것이다. 김진영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스스로 깨닫게 도와주고 싶다고. 최 교수가 청출어람하기를 힘껏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