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걸 직접 해결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그렇게 얻은 지식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를.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학생 몇몇이 만들었던 소모임 ‘님부스’도 스스로 익힌 지식으로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직접 만드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찾아서 공부하는 진짜배기 학습의 결과물이다.
님부스의 역사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마트폰이 널리 퍼지면서 다양한 기능을 가진 앱에 대한 관심이 높던 때였다.
“컴퓨터공학 과목에는 이론 수업이 대부분이었어요. 웹이나 앱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려면 직접 찾아봐야 했죠. 그래서 몇몇 친구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나동현 학생(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13)이 님부스가 출발한 배경을 소개했다. 소모임 형태로 시작했지만 인원이 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4년 5월 함께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이때 앱 개발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님부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도 있었다. 바로 기초과정부의 남대현 교수였다.
“학생이 아닌 교수님의 등장에 굉장히 당황했어요. 지원 자격을 써 둔 건 아니지만 학생들만 모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남대현 교수님도 저희와 마찬가지로 앱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죠.”
영어공부 돕는 앱, ‘키딕’을 만들다
남대현 교수는 UNIST 언어교육원의 원장이다. 그는 전 과목을 영어로 공부하는 UNIST 학생들을 돕는 방법으로 앱을 떠올리게 됐다. 남 원장은 학생들에게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앱을 설명했다. 이 설명을 들으며 님부스 구성원들의 도전정신에 불이 붙었다. 간단한 실습 수준에서 벗어나 실제 앱 개발에 나서 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물론 남 교수님도 당장 상용화할 앱을 만들자는 게 아니었어요. 같이 배우는 입장에서 함께 앱을 만들어 보자고 하셨던 거죠. 그렇게 머리를 모아 만든 게 ‘키딕(KeyDic)’이라는 문장 패턴 제안 시스템입니다.”
이지형 학생(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13)이 키딕에 대해 설명했다. 키딕은 영어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유형을 안내해 주는 앱이다. 예를 들어 ‘atom(원자)’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연관 단어를 보여 준다. 단어들을 선택하면 이들을 문법적으로 올바르게 연결하는 조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단어가 속한 영어 예문도 함께 나타나는데, 이들은 UNIST 교수들이 수업에서 사용하던 논문에서 발췌한 자료로 만들었다.
키딕으로 검색하면 단어의 뜻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도 알 수 있다. 개별 단어는 알아도 막상 몇 개의 단어가 합쳐졌을 때 쓰이는 유형에 익숙지 않던 학생에게 매우 유용하다. 남 원장의 아이디어와 님부스의 노력이 더해져 완성된 결과물이다.
절반만 성공한 키딕, 성장의 밑거름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공부해 앱을 만든 님부스 회원들에게 ‘키딕을 만들어 뿌듯하지 않냐’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남 교수님이 수업에 참고하라고 학생들에게 권했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많이 쓰지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사용자가 듣는 수업을 고려하고 만든 게 아니라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던 거예요.”
정인중 학생(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14)의 말에 이어 염준영 학생(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14)이 설명을 더했다. “키딕은 다른 검색 플랫폼보다 자료가 적어요. 사용하기 불편한 점도 있고요. 보통 논문 작업과 검색은 웹으로 하는 게 편해서 굳이 스마트폰으로 단어를 검색할 필요가 없어요. 그만큼 키딕의 실용성이 낮은 거죠.”
나동현 학생도 과거에 만들었던 키딕을 다시 내려 받고 살펴본 뒤 한계를 파악했다. “예전에 만든 걸 지금 보니 마켓에서 삭제하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더라고요. 처음이라 기획도, 개발 능력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땐 사용자들에 대한 이해보다 ‘앱을 완성하자’는 도전 자체가 중요했거든요.”
우리의 도전은 계속된다
어쨌든 도전은 성공했고 이후로도 몇 개의 앱을 더 만들었다. 지금은 님부스의 이름을 NPC로 바꾸고 방향성도 조정했다. UNIST에서 운영하는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프로젝트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이다. NPC 회원들은 UNTIS 영재교육원의 의뢰를 받아 UNIST 학과를 소개하는 ‘UNIST INFO’를 만들거나 기업의 작업도 맡아가며 앱 기획과 개발 실전 경험을 쌓았다.
NPC에 참여했던 이지형 학생과 정인중 학생은 현재 앱 ‘씀: 일상적 글쓰기’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매일 오전 7시와 오후 7시에 글감을 받아 글쓰기 습관을 들이도록 하는 앱이다. 기획할 당시에는 1000명 정도가 사용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앱이 공개된 지 1주일 만에 사용자가 2000명을 돌파했고, 국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프라이머에서 투자까지 받았다. 출시 1주년이 되는 시점에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2016년을 빛낸 서비스’의 올해를 빛낸 아름다운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동현 학생은 대학원에 진학해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연구하기로 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머신러닝은 미래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황성주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머신러닝에 대해 배우고 연구할 생각이에요. 님부스를 하면서 스스로 공부했던 게 대학원에서도 도움이 되겠죠?”
앱이 궁금해 시작한 공부는 님부스 회원들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짜 공부하는 법’을 배운 덕분이다. 이제 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도 스스로를 성장시킬 방법을 안다. 도전하고 이뤄내는 똑똑한 공부법으로 더 크게 성장할 UNISTAR들에게 미리 큰 박수를 보낸다.
Talk with Profeessor: 남대현 기초과정부 교수
평소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 관심이 있던 남대현 교수는 TED 강연을 통해 토마스 수아레즈라는 12살 어린이가 앱을 개발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차에 님부스가 함께 앱을 개발할 멤버를 찾는다는 공지를 보게 됐고, 님부스와 함께 앱 개발까지 나서게 됐다.
남 교수가 님부스와의 작업에 대해 타 대학 교수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반응은 부럽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건강한 연구개발 환경을 가진 UNIST에 대한 칭찬이었다. 남 교수는 “지난 경험을 발판 삼아 전공 맞춤형 키딕이나 음성/영상을 활용한 영어교육 앱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며 “관심 있는 UNISTAR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조만간 UNIST에서 제2의 님부스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