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 동문의 실리콘밸리 진출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UNIST 1기 이준용 동문(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09)은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매디슨캠퍼스대학원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7년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현재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유니콘기업으로 급부상한 ‘루브릭(Rubrik)’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인터뷰에 앞서, 이준용 동문은 자신의 이야기가 ‘성공 사례’처럼 다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마치고 유학길에 올랐고, 여느 학생들처럼 좌충우돌 분투 끝에 석사학위를 받은 후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기업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학부 시절 국제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고, 대학과 대학원을 조기 졸업한 데다 생활비까지 전액 지원받으며 유학 생활을 한 것은 왜 빠졌다고 물으니 “그건 UNIST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멋쩍어 했다.
미래의 길을 인도한 10년의 마스터플랜
이준용 동문은 2009년 대학에 입학할 당시 향후 10년간의 마스터플랜을 세웠다고 한다.
“저는 단기 계획을 꼼꼼하게 짜고 지키는 데는 빈틈이 많은 편이지만, 장기 계획을 세우고 직진하는 건 비교적 잘합니다. 입학할 때부터 가능한 한 빨리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치면 바로 미국의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입학 후 여러 교수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조언을 구했다. 유학을 꿈꿀 만큼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았고, 천재 소리를 듣는 신동도 아니었지만 그를 눈여겨봐준 교수가 있었다. 지도교수였던 남범석 교수였다. 남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유학에 드는 천문학적인 학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와 같은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제 여건에서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유학 가서 장학금을 받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단념하라는 얘긴 줄 알았는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스펙을 쌓으면 가능하다며 용기를 주셨어요.”
2학년 때부터 연구실에 들어가 연구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UNIST는 학부생에게도 연구 기회를 줄 만큼 연구 환경이 아주 좋았다. 3학년 때는 교환 연구원으로 해외의 연구기관에 6개월간 파견돼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국제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학부생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남 교수의 지도 아래 관련 스펙들을 쌓으며 학부 생활을 마쳤고, 마침내 바라던 미국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경쟁보다는 함께 성장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
위스콘신주립대의 대학원은 연구 중심 학교로 특히 경제학, 공학 등의 분야에서 미국 최고 수준의 연구 대학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이준용 동문의 목표는 연구가 아닌 실리콘밸리 입성. 위스콘신에서 실리콘밸리까지는 무려 3,500㎞로 여전히 먼 거리였다. 그는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인턴에 지원했다.
“첫 학기는 성적도 좋지 않아서 지원했던 인턴 인터뷰에서 거의 다 떨어지다시피 했어요. 그러다가 겨우 하나 붙었죠.”
다행히 인턴 수행 결과가 좋아서 취업 보장 승인서를 받고 나니 스카우트 제의가 제법 들어왔다. 그중에는 MS도 포함돼 있었지만, 그의 최종 선택은 2014년에 설립된 스타트업 루브릭이었다.
“아마 구글에서 제의가 들어왔어도 저는 루브릭을 선택했을 거예요. 루브릭에는 IT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다 모여 있거든요. 물론 MS나 구글에도 IT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지만, 엔지니어만 수만 명 이상인 회사에서 그런 인물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죠.”
2017년 입사 당시 루브릭의 엔지니어는 60명 남짓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었다. 이준용 동문은 그들과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일하며 기술적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루브릭의 엔지니어는 두 명 중 한 명이 스탠포드대학 출신일 만큼 뛰어난 인재가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저도 많이 긴장했어요. 같이 일해 봐도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렇다고 ‘여기서 살아남자’는 생각으로 일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경쟁 관계가 아니거든요. 함께 회사를 키우는 사람들이고, 회사가 잘 돼야 나도 성공한다는 생각을 모두가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일하게 되더군요.”
2017년 입사 당시만 해도 200명 남짓했던 직원이 현재 1,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아울러 1조 5,000억 원(13억 달러, 2017년 기준)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유니콘기업으로 선정됐다.
2018년은 그가 세운 10년의 마스터플랜이 마무리되는 해였다. 실리콘밸리 진출이라는 꿈을 이룬 이준용 동문은 이제 새로운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여행을 하는 IT 전문가’라는 꿈도 포함돼 있다. 실리콘밸리의 쟁쟁한 인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당히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이준용 동문. 다음 꿈을 향한 그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