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공학자로서 컴퓨터의 진화(성장) 과정을 지켜봤을 뿐 아니라 큰 기여를 한 노삼혁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요즘 감회가 새롭다. 지난 2월 24일~27일까지 미국에서 열리는 ‘제20회 FAST 컨퍼런스*’의 공동의장 가운데 한 명으로 선출돼 학회를 준비하며 컴퓨터 분야에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새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변방의 이름 없는 학생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 의장을 맡게 되기까지 노 교수의 삶과 일이 궁금하다.
*FAST: 시스템 소프트웨어 가운데 저장기술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학회
“혹시 펀치카드라고 들어보셨나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펀치카드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했죠. 카드 뭉치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되면, 특수한 기계로 구멍을 뚫고(펀칭), 이걸 기계실에 있는 직원에게 제출하면 다음 날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었죠.”
노 교수는 19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녔다. 이후 한 세대(30년)보다 조금 더 지났을 뿐이지만 컴퓨터가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커졌고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논리적 사고 필요한 게 마음에 들어
“사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컴퓨터라는 걸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께서 앞으로는 컴퓨터 분야의 전망이 밝을 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학의 논리적 성격이 취미에 맞았던 노 교수는 그날 선생님이 지나가는 듯 들려준 얘기가 두고두고 머리에 남았다. 1982년 서울대 공대에 입학해(당시에는 계열 단위로 뽑음) 1년이 지난 뒤 별 망설임 없이 전자계산기공학과(현 컴퓨터공학부)를 선택한 이유다. 당시는 컴퓨터를 ‘전자계산기’로 부르던 때였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공부는 별로 안 했지만 웬만큼 성적을 받은 걸 보면 적성에 맞았나 봅니다.”
노 교수는 논리적 사고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따라서 배울수록 컴퓨터에 점점 더 흥미가 커졌다. 당시 학부를 마치면 대다수는 서울대나 카이스트의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취직을 했지만 노 교수는 유학을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를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과의 졸업생 가운데 2~3명 정도가 유학을 가는데 그가 졸업한 해는 6~7명이나 됐다. 학부 성적으로 가장 밀렸던 노 교수는다른 친구들이 아무도 희망하지 않은 메릴랜드대를 선택했다. 국내에는 이름이 덜 알려진 대학이라 그랬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는 아주 뛰어난 곳이었다. 게다가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준다니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그에게는 꿈 같은 일이었다.
“당시 대기업 월급이 25~30만 원이었는데 생활비로 70만 원 돈을받았으니까요.”
물론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와 미국의 물가 차이가 워낙 커서 생활비로 빠듯한 금액이었지만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7년에 걸친 짧지 않은 유학 생활을 버텼다. 당시 미국에서는 AI(인공지능) 분야가 인기가 높아 다들 몰려들었지만(그 뒤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가 2010년대 화려하게 부활했다) 노 교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즉 하드웨어인 컴퓨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선택한 연구주제가 ‘병렬처리 시스템’이다.
지금은 익숙한 용어이지만 당시만 해도 병렬처리는 그다지 연구가 되지 않은 분야였다. 그러나 컴퓨팅 파워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커짐에 따라 워크스테이션 같은 고가의 컴퓨터를 대신해 작은 컴퓨터 여러 대를 연결해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한 뒤 종합해 결과를 얻는 효율적인 병렬처리 시스템 개발이 긴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노 교수는 처음으로 컴퓨터 공부(연구)가 무척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
우연히 시작한 저장기술 연구
노 교수는 지난 1993년 박사학위를 받고 잠깐 조지워싱턴에 머물고 난 뒤 이듬해 홍익대에 부임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고 11년이나 지난 시점임에도 국내 컴퓨터 연구 인프라는 여전히 부실했다. 병렬처리를 더 연구하고 싶었지만 한국에서는 못하겠다고 판단했다. 이 분야는 장비가 중요한데, 그 시기 국내에는 슈퍼컴퓨터 같은 연구를 위한 필수 장비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차선책으로 분산처리 시스템을 연구했다. 분산처리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들을 활용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분야다.
이렇게 고전하던 중 서울대 교수로 있던 한 선배가 저장기술 연구를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시절에 컴퓨터에서 대표적인 저장장치는 하드디스크다. 개인이 PC에서 작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꺼내보는 건 어떤 식으로 하든 별 차이가 없겠지만 데이터가 커지면 소프트웨어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내 책장에는 책을 대충 꽂아도 바로 찾을 수 있지만 도서관이라면 분류체계가 얼마나 잘 돼 있느냐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저장기술 쪽으로 점차 관심이 넘어가던 1999년 삼성전자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다. 미래의 저장 매체인 플래시메모리를 개발하고 있는데, 일본의 한 업체에서 개발한 구동 소프트웨어에 대해 검토해달라는 것이었다. 노 교수는 서울대의 선배 교수와 함께 소프트웨어를 들여다봤고 뜻밖에도 꽤 엉성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예 자신들이 구동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삼성에 제시했다. 2000년대 만든 삼성의 휴대전화에 들어있던 플래시메모리 기반 저장장치는 이 소프트웨어로 구동됐다.
참고로 플래시메모리는 비휘발성메모리, 즉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남아있는 메모리로 입출력이 자유롭고 속도가 빠르면서 전력 소모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수명을 다해 저장장치로는 불안정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대다수 반도체 회사들은 SSD(Solid State Drive: 기존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저장장치) 개발을 주저하고 있을 때 삼성이 과감하게 뛰어들어 기존 디램 반도체 기술로 고집적(고용량)의 SSD를 만들어 이 단점을 극복했다. 지능적인 운영 소프트웨어와 함께 용량이 넉넉하면 기기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데이터를 지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노 교수는 SSD를 효율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저장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고 2010년대 중반, 구글과 페이스북 등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속속 SSD를 채택하면서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됐다. 그 결과 2016년에는 미국컴퓨터학회(ACM)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트랜잭션 온 스토리지(Transactions on Storage)>’의 편집장으로 뽑혔고 작년에는 2020 FAST의 의장으로 선출됐다.
한편 2000년대 중반부터 노 교수는 차세대메모리 기술도 병행해 연구하고 있다. 차세대메모리란 비휘발성메모리로 SSD처럼 저장장치로 쓸 수 있으면서도 디램처럼 빠른 연산을 할 수 있는 메모리다. 한 마디로 디램과 SSD의 장점을 합친 메모리라는 것! SSD 개발에서 삼성에게 밀려 쓴잔을 마신 미국의 인텔이 지난해 첫 제품을 내놓으면서 주목 받았다.
비휘발성메모리가 SSD처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노 교수처럼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저장기술은 공기 같은 존재
2015년 가을학기에 UNIST에 새 둥지를 튼 노 교수는 연구환경도 좋을 뿐 아니라 함께 연구할 동료 교수들도 있어 지난 5년이 무척 즐거웠고 연구 성과도 많이 냈다. 현재 박사과정 6명과 석사과정 3명, 학부생 몇 명이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노 교수는 컴퓨터 분야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현재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들에 대한 수요가 높습니다. 미래에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한때 반짝하고 사라질 상황이 아닙니다. 산업구조가 모두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으니까요.”
소위 ICT(정보통신기술)라고 불리는, 컴퓨터 관련 분야는 지금 엄청난 호황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AI와 IoT(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 일상생활이 바뀌는 혁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UNIST의 학과 졸업생들도 취업하지 못한 학생이 없을 정도로 인기다.
“다만 아쉬운 건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전공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학의 경우 공대생의 절반 이상이 컴퓨터 관련 분야가 전공인데 말이죠.”
이처럼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경우 대학별로 자유롭게 학과의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처음 배울 때 꽤 어렵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며 중심을 잡을 때까지 여러 차례 고비를 겪어야 한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격언이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심오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뿐더러 실력을 인정받으면 다른 분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연봉을 받으며 스카우트되기도 하죠.”
노 교수가 생각하는 컴퓨터공학의 묘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마술 같은 측면에 있다. 물론 컴퓨터 본체라는 하드웨어는 ‘유(有)’이지만 다른 기계와는 달리 사용법을 모르면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다. 그런데 각종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작동을 시키면 바둑고수 이세돌을 능가하고 세계에서 수만 명이 거의 동시에 유튜브 동영상을 볼 수도 있는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처럼 화려한 주목을 받지는 않지만 오늘날 빅데이터 시대에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저장기술 연구는 컴퓨터 분야에서 ‘공기’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저장기술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노 교수가 ‘제20회 FAST 컨퍼런스’도 성공적으로 치르기를 바란다.
글_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며 <강석기의 과학카페>,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를 저술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