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고래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브래들리 타타르(Bradley Scott Tatar) 인문학부 교수. 그는 한국에서 산지 벌써 14년이 되었지만,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며 쑥스러워했다. 지난 2006년 가톨릭대, 2008년 KAIST 객원 교수를 거쳐 2010년 UNIST에 부임했으니 그에게 울산은 제2의 고향이라고 할만하다. 게다가 타타르 교수는 수년 동안 울산의 고래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비록 한국말은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는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깊을 것이다. 물론 그가 문화인류학자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울산,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난 타타르 교수는 과학의 세례를 흠뻑 받고 자랐다. 그곳에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센터가 있어 견학을 자주 갔고 당시 스타과학자였던 칼 세이건이 진행하는 TV프로그램도 즐겨 봤다. 또한 그가 쓴 책 <코스모스>는 단순한 과학책이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이 융합된 종합교양서였다.
“칼 세이건은 책에서 외계 문명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구의 모든 문명도 외부인에게는 외계 문명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자라면서 사물(자연)보다는 사람에 더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달은 타타르는 대학에서 인류학과를 선택했고 뉴욕주립대 대학원에 진학해 문화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인류학이란 인류의 삶과 역사를 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이 많았는데, 고향인 휴스턴이 멕시코와 가까운 것도 한 이유다. 코스타리카 커피농장의 현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충돌, 미국에 사는 라틴아메리카 이민자 문제 등을 연구했다.
그런 그가 대학원 생활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었다. 같은 연구실에서 언어인류학을 연구하고 있던 최진숙 인문학부 교수와 2003년 결혼한 그는 2006년 아내를 따라 한국에 오는 ‘인류학적 모험’을 시도했다.
[타타르 교수가 최진숙 교수와 함께 참여한 STAR-MOOC 소개영상]
“사실 이전까지는 한국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정말 현대적인 사회더군요. 최고를 지향하는 성향도 강하고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아요.”
부천(가톨릭대)과 대전(KAIST)에서 산 4년 동안 타타르 교수는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 적응하느라 한국문화 연구는 엄두도 못 냈다.
그런데 지난 2010년 UNIST에 부임한 뒤 울산의 고래축제를 구경하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조선과 화학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도시인 울산에서 매년 축제가 열릴 정도로 고래문화가 융성하니 그 배경이 궁금했던 것. 게다가 한편으로는 고래를 사랑한다면서도 축제 현장에는 고래고기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점도 타타르 교수의 흥미를 자극했다.
고래를 바라보는 두 시선이 공존하다
지난 수년 동안 울산의 고래문화를 연구하면서 타타르 교수는 한 지역의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예를 들어 울산의 고래문화 전통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7000년 전 선사시대(울산 반구대암각화에는 고래가 여럿 등장하고 고래잡이 장면이 묘사돼 있다)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만 19세기 말 러시아 포경선이 울산 장생포에 고래해체장을 만들면서 포경산업이 시작된 이후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82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적 포경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1986년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회원국들이 실천에 들어가면서 포경산업이 쇠퇴했지만 대신 고래를 테마로 한 축제가 만들어져 울산은 여전히 고래를 상징하는 도시로 남았다.
그러나 울산 고래문화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식당에서 취급하는 고래고기 가운데 불법포획으로 얻은 것이 꽤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타타르 교수는 지난 2018년 정창국 교수와 함께 고래고기 소비자의 불법포획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 그 결과를 학술지 <해양정책(Marine Policy)>에 발표했다.
“소비자 다수가 불법 유통된 고래고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따라서 고래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DNA 검사를 도입한다면 불법포획을 막으면서도 고래문화의 한 측면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UNIST의 이공계 학생들에게 인류학 수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타타르 교수는 “학생들은 전공 분야라는 좁은 시야를 벗어나 지구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기후변화 등 현재 지구가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래축제 기간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현장조사에 참여시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수년 전 인류학 수업을 듣던 김세준 학생이 찾아와 “돌고래 방류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고 제안해 함께 연구하게 됐고, 2018년 학술지 <연안관리(Coastal Management)>에 논문을 실었다.
지난 2013년,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수족관에서 공연을 하던 돌고래를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자연으로 돌려보낸 사건(‘제돌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놓았다.
앞으로도 타타르 교수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문화인류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어떤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놓을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