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어린왕자의 상자. 소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순수한 상상력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 눈앞에 펼쳐지게 됐다.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3D 프린팅 기술만 있으면 상상하는 물건을 현실로 데려올 수 있다. 설계도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3D 프린팅 기술은 이미 실현 단계를 지나 빠른 속도로 진화 중이다.
최근 국내외 언론은 3D 프린팅으로 만든 새로운 제품과 발전 가능성에 대한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개발된 지 30여년 만에 과학기술의 현장을 달구는 대세 키워드가 된 것이다. 물론 일반 대중에게 3D 프린팅은 피규어 모형 제작 등이 먼저 떠오르는 낯선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산업적 가능성을 차츰 인정받으며 증기기관과 컴퓨터, 인터넷 발명에 비견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시제품 제작용으로 개발된 3D 프린팅이 新산업혁명을 이끌 초석으로 주목받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3D 프린팅이란 무엇인가?
3D 프린팅은 컴퓨터 등에 입력된 신호를 3D 프린터를 이용해 입체 물질로 제작하는 3차원 인쇄 기술이다. 종이에 활자를 출력하는 시대를 넘어, 원하는 물건을 프린터로 직접 출력하는 방식으로 프린팅 기술이 진화한 것이다. 3D 프린터만 있으면 어떤 물건이든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으며, 단시간에 원형에 가까운 물체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공유와 수정이 쉽다는 장점까지 있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에 2014년 뉴욕타임즈는 ‘세계 25대 발명 기술’에 3D 프린팅 기술을 포함시켰으며, 미국의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3D 프린터는 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3D 프린팅의 원리는 간단하다. 전용 카메라로 물체를 찍거나 설계도를 입력하면, 3D 프린터가 플라스틱이나 금속 같은 고분자 물질을 뿌려 물건의 바닥부터 끝까지 형태를 만든다.
이와 반대로 커다란 덩어리를 깎아 물건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3차원 조각기는 각종 물질을 쌓는 방식보다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 수 있다. 반면 다양한 색으로 인쇄할 수 없고, 안쪽이 들어간 모양은 조각하는 날이 안쪽까지 들어가기 힘들어 만들기 어렵다.
3D 프린팅은 부품을 조립해 전체를 구성하는 기존 제조업의 생상 공정과 비교해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생산 비용의 절감이다. 기존의 생산 방식처럼 별도의 금형이나 생산 설비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재고를 쌓아 둘 필요가 없어 재고 관리 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 또한 개인 맞춤형 제품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어 현재의 대량생산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가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3D 프린팅의 무한 잠재력
新산업혁명을 이끌 초석으로 대두되는 3D 프린팅 산업은 시장 규모와 성장 잠재력이 실로 무한하다. 활용 범위도 의학이나 치의학, 패션 디자인, 자동차, 항공, 우주 분야 등 무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하다.
이 기술이 가장 폭넓게 활용되는 곳은 의료 분야다. 현재 국내에서도 3D 프린팅을 통한 인공 턱뼈와 인공 치아 등의 모형 보형물 제작을 진행한다. 또 수술 부위의 신체 모형을 제작해 의사들의 수술 숙련도를 향상시키는 데도 활용된다. 최근에는 맞춤형 인공관절 3D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해 국산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인공관절 수술은 환자의 무릎 관절 모양과 크기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3D 입체 영상 시뮬레이션을 거친 뒤 인공관절을 프린팅해 사용한다. 이로써 환자 관절 손상의 크기와 모양,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POSTECH과 서울 성모병원 연구진이 태어날 때부터 코와 콧구멍이 없는 희귀안면기형 소년에게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인공 콧구멍과 기도 지지대를 안착시켜준 사례도 있다.
산업 및 제조 분야에서도 3D 프린팅 기술은 단순한 시제품 생산을 넘어 산업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14년 영국 항공방위산업체는 조종석 무선통신장치 보호덮개, 착륙장치 보호대 등 일부 부품을 3프린터로 만들어 전투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같은 해 미국 해군은 3D 프린팅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해 항공모함 부품 생산에 성공했으며, 미국 우주항공국은 3D 프린팅 기술로 원거리 망원경을 제작했다.
3D 프린터로 인쇄된 5층 아파트를 공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중국의 3D 프린팅 건설 업체 ‘윈선’도 있다. 골재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두 3D 프린터로 인쇄한 후 이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의 건축 기간은 6일에 불과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3D 프린팅 기술을 ‘마법의 상자’로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재료의 특허 문제나 시간, 소재의 안전성 등 여전히 개선돼야 할 문제점이 많다. 불법 제조, 책임소재, 안전성 등 쓰임에 따라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혼란도 해결해야 한다. 때문에 3D 프린터가 완전한 ‘마법의 상자’가 되려면 반드시 기술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함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준 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세계 최고 3D 프린팅 기술을 만들어 가다
UNIST는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의 3D 프린팅 기술을 짧은 시간에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끌고 있다. 이런 연구 성과를 가능케 한 것은 UNIST의 공동연구시설인 연구지원본부(UCRF) 때문이다.
연구지원본부에서 보유한 SLS(selective laser sintering) 3D 프린터는 일반적인 3D 프린터에서 사용하는 폴리머 계열의 소재뿐만 아니라 금속 프린팅까지 가능한, 3D 프린터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제품이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기하학적 형상의 램프, 펜던트, 각종 기계 부품과 기능적인 요소가 추가된 드론, 중소기업 시제품 등을 제작했다.
그 중에는 ‘어떤 형태의 디자인이나 기능도 설계도만 있으면 제작이 가능하다’는 3D 프린팅의 장점을 이용해 기존 제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형과 기능을 추가한 제품들도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SLS 3D 프린터로 만든 드론이다. 연구진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기존 드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비행 중 날개의 간격을 실시간으로 조절하여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도록 하며, 좁은 통로도 거침없이 지날 수 있게 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자동차 헤드램프, 라디에이터, 연료통 등의 시제품 제작에도 쓰였다. 3D 프린터로 시제품을 제작하면 기존의 방식으로 만드는 것보다 제작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MRI 촬영을 위한 마우스 마취 지그 같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부품들도 만들어 UNIST의 연구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최첨단 연구 장비와 전문 연구진이 운용하는 UNIST의 연구지원본부. 세계 최고를 꿈꾸는 공학자들과 新산업혁명을 이끌 3D 프린팅이 만들어 낼 내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