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문화원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토크 페스티벌 페임랩. 이 대회는 3분간 청중에게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4분간 심사위원과 질의응답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17 페임랩코리아에서 우수상의 기쁨을 안은 문원식 학생을 만났다.
매일 실험에 열중하고 논문을 쓰는 바쁜 일상의 연속. 흔한 대학원생의 모습이다. 석사 3학기, 바쁜 대학원 생활 속에서도 연구에 대한 후회나 불만은 없었지만, 반복되는 생활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대회에 지원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혔다.
“대회 전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던 것들을 무대 위에서 펼쳤을 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기뻤어요. 스스로 후회 없을 만큼 무대 위에서 충분히 즐기고 내려왔기 때문에 만족스러웠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었는데, 덤으로 상까지 받게 돼 자신감도 생겼고요.”
특별한 미생물 ‘벨로’ 이야기
2005년 영국 첼튼엄 과학축제에서 시작된 페임랩은 3분이라는 제한시간 내에 오직 말과 동작, 소품만을 활용해 과학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대회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2017 페임랩코리아에서 문원식 학생은 슈퍼박테리아에 대항할 ‘벨로’에 대한 이야기로 우수상을 받았다. 발표 주제로 선택한 ‘벨로(BALO, Bdellovibrio And Like Organism)’는 그의 연구 분야다. 문원식 학생은 학부 3학년 때 이 분야에 흥미를 갖고 응용환경미생물연구실에 들어와 지금까지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벨로는 다른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특별한 박테리아예요. 하지만 인간에게는 해가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죠.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할 때마다 내성을 갖는 박테리아가 발견됐는데, 그게 바로 슈퍼박테리아예요. 몇몇 미생물학자들은 이 특별한 박테리아 ‘벨로’를 이용해 슈퍼박테리아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제가 연구하는 벨로는 우리 삶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예요.”
문원식 학생은 자신의 연구 분야를 좀 더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논문과 책을 찾아 읽고, 그중 재미있는 구절과 사건 등을 모아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연구실 선배와 다른 전공을 가진 친구들, 심지어 미용실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지루하지는 않은지 의견을 물었다.
3월 지역 예선과 4월 전국 예선을 거쳐 5월 본선 대회를 치르기까지 세 번의 발표를 준비하면서 내용도 꾸준히 보완했다. 그 결과 수상의 기쁨을 안았고, 지난 6월 수상 특전으로 영국에서 열린 첼튼엄 과학축제와 페임랩 국제대회를 참관했다.
“사실 대회 참관도 기대가 됐지만 처음 가는 유럽에 대한 설렘이 더 컸어요.(웃음) 런던의 과학기관을 방문해 기관장과 실무자를 만나 과학의 대중화에 대한 그들의 노력과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학축제에서는 어린아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관람객의 연령층이 매우 폭넓어 놀랐다. 우리나라 과학관에 아이들만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고. 영국에서는 과학이 학문이 아닌 문화라는 것을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다.
“과학 대중화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 모습을 엿본 것 같았고, 국내 과학 대중화를 위해 제가 한 발 내딛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어요.”
치열하게 연구하고 소통한다
문원식 학생은 어린 시절부터 과학 서적을 좋아했다. ‘하늘은 왜 파랄까?’처럼 자연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즐겨 읽었다. 자연스럽게 과학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 애정과 관심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그맘때 <보이지 않는 지구의 주인 미생물>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미생물이 가진 다양성에 눈을 떴다. 미생물에 한눈에 반한 그는 관련 서적을 찾아 읽으며 혼자서 공부했다.
“UNIST 입학 후 로버트 미첼 교수님 연구실을 알았을 때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연구실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 예상 질문을 뽑아서 연습할 만큼 열의를 불태웠죠. 교수님께서 열린 마인드와 수평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셔서 연구실 분위기도 무척 좋아요. 페임랩코리아의 본선 참가자 10인에 뽑혔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정말 좋아하셨어요. 교수님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 덕분에 맘 편히 대회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UNIST에서의 학업과 연구가 ‘소통하는 과학자’로 성장하는 데도 영향을 줬을까? 그는 UNIST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수평적이다’, ‘젊다’, ‘자유롭다’를 꼽으며 “UNIST는 기본적으로 역동적인 느낌이 있어서 뭔가를 만들어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익숙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영향으로 저도 치열하게 생각하고 도전할 수 있었어요. UNIST와 연구실의 분위기, 교수님의 가르침이 소통하는 과학자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밑거름이 된 셈이죠.”
대회는 끝났지만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참여해야 할 후속 활동들이 남아 있다. 문원식 학생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공식 위촉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중 한 명으로서 재단에서 기획, 지원하는 후속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의 입을 통해 과학은 한층 흥미롭고 유익한 이야기로 재탄생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학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더 많은 것들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실력 있는 과학자가 되어야겠지요. 저의 가장 큰 꿈이자 목표예요. 박사과정까지 모두 마치려면 앞으로 4~5년의 시간이 더 필요해요.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연구하면서 틈틈이 ‘과학 커뮤니케이션’ 영역에도 계속 발을 디디고 싶습니다. 과학자로서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새로운 연구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으며 연구와 소통 사이에서 균형 잡힌 과학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문원식 학생. 치열하게 연구하고 소통하는 젊은 과학자의 내일을 응원한다.
글: 오인숙 에디터(김형윤편집회사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