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혁신과 혁신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원한다. 그렇다면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그러한 열정과 상상력을 갖게 되었을까. 필자는 UNIST에서 토이박스를 디자인하며 혁신에 대한 답을 얻었다.
혁신적인 디자인은 그 자체로 모든 디자인 학도들의 꿈일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의 첫 학기 수강과목을 제임스 셀프 교수의 <혁신적 제품 개발>을 택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셀프 교수가 올려놓은 강의계획서가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해왔던 디자인은 대부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목표가 눈에 보이고 문제도 명확했다. 하지만 이 수업은 ‘혁신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서 디자인을 시작하고, 이 관점을 유지한 채 디자인을 마무리하도록 구성됐다. 쉽게 말하자면 <혁신적 제품 개발> 강의의 목표는 혁신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 과정을 통해 혁신을 배우는 것’이었다.
시선을 높이고 시야를 넓힌 아이디어
수업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수업에선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없이 쫓아다니지 않았다. 대신 문제에서 한 발짝 벗어나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서 곱씹어보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학부 시절에는 몰랐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수업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혁신’이라는 주제로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필자가 선택했던 주제는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인이었다. 필자는 늘 빅터 파파넥 교수에 의해 창시된 ‘90퍼센트를 위한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디자인의 혜택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혹은 사회에서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약자 중에서도 가장 약자에 속하는 BOP(Bottom of Pyamid) 국가의 어린이들을 위한 디자인을 결심했다. 자연재해나 전쟁 등에 노출된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은 바로 어린이들이다. 육체적으로도 가장 연약하고 정서적으로도 발달하는 중에 있는 아이들은 천재지변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될 때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그뿐 아니라 평생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생각난 게 바로 구호물품 상자였다. 상자는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질로 만들어지고, 생산 단가도 매우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단순히 물건을 운반하는 데만 사용될 뿐 용도를 다하면 버려져 쓰레기가 되기 일쑤였다. 만약 상자로서의 기능 외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으로 변할 수 있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놀라운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토이박스
대부분의 구호 상자 안에는 식량이나 의약품 등 생존에 필요한 물품이 들어있다. 이는 대부분 신체적 활동에 필요한 물건들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에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 구호물품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재난을 겪었기 때문에 이들의 다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을 디자인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아동심리치료에 사용되는 기법들을 조사하던 중 놀이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치료효과를 볼 수 있는 놀이의 원리에 대해서 공부하고 아동 놀이치료 전문가에게 궁금한 사항들에 대한 답을 얻었다. 이렇게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다듬고 각종 재질 테스트 및 시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수많은 레이저 커팅과 하중 시험을 거치고 마침내 최종 토이박스 프로토타입이 탄생했다.
셀프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아이디어를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즐거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 자체를 통해 혁신의 원리를 배우는 게 목적인 과정. 그 덕분에 어떤 압박감도 없이 순수하게 사고할 수 있었다. 만약 처음부터 ‘구호상자’를 디자인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어떤 색을 쓸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지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셀프 교수의 제안으로 공모전에 나가기로 했다. 토이박스 프로젝트를 더 발전시킬 팀이 꾸려졌고, ‘2016 코어 77 디자인 어워즈’에서 ‘오픈 디자인’ 학생부분에서 최우수상과 ‘포장’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디자인’으로 선정됐다.
토이박스를 구상하던 시간은 ‘혁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필자만의 답을 구할 수 있는 과정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실력 있는 팀의 도움을 받아 더욱 풍성한 아이디어들로 꾸려졌다. 그리고 국제 디자인대회 수상이라는 감사한 결과도 얻게 됐다. 토이박스가 필자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듯 언젠가 이 아이디어가 아이들의 잃어버린 미소도 되찾아주지 않을까? 그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글 장기도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대학원생
장기도 학생은 한동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현재 백준상 교수의 지도 아래 지속가능하고 사회혁신적인 디자인을 연구하는 DESIS(Design for Social Innovation and Sustainability) Lab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