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발생의 과학적 원리를 밝히고, 폭염 예보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된 UNIST의 ‘폭염연구센터(Heatwave Research Center)’. 짧게는 3일, 길게는 2주 전부터 폭염 발생을 짐작할 수 있어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전망이다. 폭염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폭염 예보를 위한 기후 모델링 등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다가오고 있다. 더위로 열사병, 탈진, 경련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다리가 붓는 부종(浮腫)도 생긴다. 피부가 가렵거나 따끔거리기도 한다. 뾰루지나 소수포(小水疱, 1㎝ 미만의 물집)가 생긴다. 이렇게 무더위로 생긴 각종 질환을 온열질환이라고 부른다. 이런 온열질환을 유발하는 폭염을 예측할 수 있다면, 재산 손실도 줄이고 사람 목숨도 구할 수 있다. 태풍을 예측해 사상자를 줄이고 재산도 보호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날로 심각해지는 폭염, 어찌 하오리까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더위로 병원 치료가 필요한 온열질환자가 작년 1,574명이었고 이 중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작년 수치는 그 전해인 2016년보다 줄었다. 주된 원인은 온도가 내려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6년은 1994년 이후로 사상 최고의 폭염일수를 기록했다. 하루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이면 폭염일수에 포함하는데, 2016년엔 폭염 일수가 22.4일이었다. 이때의 온열질환자는 2,125명에 달했고, 17명이 폭염으로 생명을 잃었다.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뜨거운 날씨가 매년 사람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외국의 사망자 수는 통념을 벗어난다. 2010년 러시아는 5만 6,000명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2003년 폭염으로 유럽에서 3만 5,000명이 사망했다. 폭염이 태풍, 폭설 못지않은 자연재해로 인류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태풍, 쓰나미, 지진 등을 예측하고 준비하듯 이 폭염에 대한 경각심도 높여야 한다.
UNIST는 작년 6월에 폭염연구센터(Heatwave Research Center)를 신설해 운영 중이다. 이명인 폭염연구센터장(도시환경공학부 교수)은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파에 이어 두 번째”라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폭염 사망자 숫자가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폭염이 사회, 경제, 산업도 바꾼다
폭염은 사회적, 경제적 피해도 일으킨다. 2016년 폭염으로 국내에서 C형 간염이 집단 발병하고, 상수원 녹조가 증가했으며, 15년 만에 콜레라가 유행했고, 식중독 환자가 1,000명 이상 나타나는 등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닭, 오리, 돼지 등의 가축 72만 5,000마리가 폐사했고, 어패류 역시 6,200만 마리가 몰사했다. 농경지의 가뭄도 심각해졌다. 하나하나가 민심이 흉흉해질 수 있는 사안이다. 게다가 폭염은 양극화도 가중시킨다. 이명인 센터장은 “국내 폭염 사망자는 60대 이상의 노령자, 실외 또는 야외 근로자, 무직자 등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폭염은 산업 지도를 바꾼다. 2016년 하루 전력 사용량이 8,518만㎾에 달했고, 에어컨은 불티나게 팔렸다. 전년 대비 50%나 증가했고, 외출을 삼가다 보니 8월의 인터넷 쇼핑 매출이 2015년 대비 27%나 늘었다. 폭염이 덮칠 것으로 예측되면, 가전업체와 쇼핑몰기업의 매출도 오를 것이다. 영화관, 워터파크의 입장객도 증가할 것이다. 관련 주식이 무더위를 맞아 고공행진을 이어간다는 기사도 나올 것이다.
향후 폭염이 증가할 것인지, 아니면 기세가 꺾일지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초등학생도 아는 지구온난화를 고려하면 안타깝게도 폭염의 기세는 강해질 것 같다. 지난 2014년부터 3년 연속으로 지구는 꾸준히 뜨거워져 평균 기온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
지구온난화가 강해지면 폭염 역시 동반 상승한다. 1880년 관측 이래 지구촌 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10개 기간 중에서 1998년 한 해만 빼고는 모두 2000년 이후다. 해당 데이터는 20세기 세계 평균기온보다 높았던 연도를 추출한 것이다. 특히 2016년은 국내 관측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을 안겨다준 한 해였다.
폭염이 앞으로도 기승을 부린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폭염 경보의 정확성을 높이고, 폭염 경보가 발령되면 야외 근무를 중단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법제화하지 않고 사업주의 재량에 맡기면 희생이 감소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빈곤층에 에어컨 설치, 전기 사용료 지원 등도 고려해야 한다.
도시 열섬 현상을 막아라!
폭염은 도시 설계에도 영향을 준다. 강한 햇볕은 번화가나 인적이 드문 산골에 모두 내리쬐지만, 도시가 유독 덥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속속 나왔다. 열대야와 폭염이 농촌보다 도시에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화가 불러온 인공 피복의 증가, 녹지 감소, 고층 빌딩의 증가 등은 모두 도시 내부의 열을 축적하고 풍속을 저하하는 악영향을 끼칩니다. 여름철 냉방기, 차량 등에서 나오는 인공 열이 빌딩 외부의 기온을 높이는 요소예요.”
폭염연구센터에 따르면,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 강남에서 풍속이 약해지고 열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은 열섬(Urban Heat Island) 현상이 발생한다. 서울시는 도심의 열을 측정하는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열섬 현장이 일어나는 지역을 걷다가 폭염질환에 걸릴 수도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니고 백주대로의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시의 고층 빌딩을 지을 때 교통유발부담금이라는 일종의 벌금을 매긴다. 고층 빌딩이 도로 체증을 일으키기에 사회 전체적으로 건물주에게 부가하는 것이다. 앞으로 고층 빌딩을 지을 때 교통유발부담금에 상응하는 폭염유발부담금을 공론화할 수도 있다.
“녹지 의무 비율 준수, 도심 분수 설치 등의 열섬 저감을 위한 노력을 국가 전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는 바람길을 고려한 토지 이용계획 수립으로 고질적인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했어요.”
빌딩을 휘감는 바람의 경로 연구는 열섬 해소뿐 아니라 테러 방지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미국 국방부는 펜타곤(Pentagon) 건물 주위의 바람의 이동 경로를 수치 해석으로 재현했다. 이 센터장은 “미국 정부는 워싱턴DC와 뉴욕에 높이 10m의 기상관측 타워를 빌딩 위에 설치해 도심 내부의 바람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며 “도심에서 위험 물질이 터지면 어떻게 확산하는지 파악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UNIST 폭염연구백서… 슈퍼컴퓨터에서 인공지능까지
도심의 열섬 연구를 제대로 예측하려면 많은 양의 자료, 즉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태풍의 진로, 폭염 경보를 예측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의미를 얻으려면 고사양의 컴퓨터가 필수. 컴퓨터 중에도 슈퍼컴퓨터를 활용한다면 계산을 줄이고, 정확한 예측이 수월해진다.
국내 최고 사양의 슈퍼컴퓨터는 기상청의 CRAY XC40이다. 이 슈퍼컴퓨터는 5.8PF(페타플롭)의 연산이 가능하다. 1PF는 1초에 1,000조의 부동소수점 연산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를 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기상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폭염연구센터 소속의 도시환경공학부 차동현 교수는 기상청의 CRAY XC40를 활용해 폭염, 태풍, 폭설과 같은 재해기상현상을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전국규모, 지역규모, 국지규모 모델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차 교수는 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재해기상 예측을 위해 기상청의 수치모델들을 향상시키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정교한 폭염 예측을 위해 1.5㎞ 수평해상도의 국지규모 모델을 개선하고 있다.
2015년 8월 울산 지역은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하며 유례없는 폭염을 경험했다. 차 교수는 그 원인으로 독특한 지형과 유난히도 적었던 강수를 들었다. 우선 1,000m 이상에 달하는 영남알프스로 인해 푄현상이 발생했다. 습윤한 공기가 산을 넘어 반대쪽으로 불면서 고온 건조한 바람으로 바뀌게 된 것. 이때 바람 방향의 아래쪽에 위치한 울산의 최저 기온이 상승했다.
이 시기엔 비도 적게 내려서 토양이 머금고 있던 수분 증발량도 감소했고, 이것이 낮 동안 최고 온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차 교수는 이 결과를 기반으로 국지규모 모델의 지형 자료와 토양 수분 초기화를 개선했고, 기상청과 함께 폭염 예측력을 향상시키는 연구에 이 내용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형 기상 모델 개발되면 예보 정확성 Up!
일기예보는 감(感)으로 하는 게 아니다. 하늘을 보다가 궂을 것 같으면 비가 오고, 구름 너머에 햇살이 보이면 날이 개일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과정으로 예측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수증기나 이산화탄소의 움직임을 관측해 에너지 보존 법칙, 운동량 보존 법칙, 질량 보존 법칙 등의 물리학을 동원해 운동 방정식을 구현한다.
대기의 운동을 설명하는 운동 방정식은 편미분 방정식의 집합이다. 이 편미분 방정식을 기상 지배 방정식이라고 부른다. 편미분 방정식은 특이한 몇 가지를 빼고는 모두 정확한 해(解)가 없다. 수학자를 비롯해 물리학자, 공학자들은 모두 정확한 해에 근접한 답안을 구한다.
차 교수를 비롯한 기상학자들 역시 근사치를 구한다. 기상학자들은 규명해야 할 대기의 공간을 촘촘히 나눠 기상 지배 방정식에 접근한다. 이때 컴퓨터가 핵심 역할을 한다. 컴퓨터가 준 근사치가 기상 예보의 밑천이 된다. 우리나라는 초기 일본이 개발한 기상 모델을 변형해 사용했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영국 기상청의 기상 모델을 도입해 현재까지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2009년부터 독자적인 한국형 기상 모델을 개발하고자 총 1,000억 원을 투자했다. 여기에 슈퍼컴퓨터 CRAY XC40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제 개발이 막바지에 왔다. 차 교수는 “한국형 독자 모델의 개발이 끝나면, 기상 예보의 정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기상 모델을 폭염 외에 폭우, 태풍, 폭설의 예측에도 활용한다. 일석삼조(一石三鳥)인 셈이다. 차 교수는 “다양한 기상 현상은 하나의 대기방정식계에서 예측이 가능하지만 예측 목표가 되는 기상현상에 따라 추가적인 기술을 적용해 예측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며 “예컨대 자동차로 주행할 때, 비나 눈이 내려서 기상이 달라지면 타이어만 교체해도 운전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위성과 레이더자료를 이용한 모델 초기자료의 향상, 보다 상세한 기상현상의 모의를 위한 해상도 증가, 한반도 기상 조건에 맞는 물리과정모수화의 최적화 등이 예측성 향상을 위해 적용 가능한 추가적인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인공지능 활용하고, 인공위성 정보 결합하고
폭염연구센터는 정확한 기상 예측을 위해 인공지능도 쓴다. 이때 약 1.5㎞를 하나의 점으로 표현하는 수치 모델을 활용한다. 폭염연구센터 소속인 도시환경공학부 임정호 교수는 수치 모델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에 인공위성 정보를 결합한다.
인공위성 정보는 국내 천리안 위성, 외국의 랜드샛(Landsat), 애스터(ASTER), 모디스(MODIS)의 위성 자료를 주로 사용한다. 즉 수치 모델과 위성 자료 그리고 주요 공간 정보를 인공지능으로 융합해 100m급의 고해상도 폭염 정보를 만들고 있다.
임 교수는 위성 자료를 슈퍼컴퓨터에 입력해 결합한 정보로 단기 폭염을 예측할 계획이다. 다음 날의 최고/최저 온도, 상세 폭염 지도 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위성자료 분석에 활용할 인공지능이 알파고처럼 복잡할 필요는 없다”며 “목적에 맞게 주어진 자료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일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짜주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전했다.
임 교수는 인공위성 자료와 수치모델 자료에 인공지능 기술을 더하면 장기, 중기, 단기로 폭염을 예보하는 게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글: 조호진 과학칼럼니스트
조호진 과학칼럼니스트는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서울대 신소재공동연구소 연구원,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올해의 10대 뉴스 선정위원(2007년~2009년)에 뽑히기도 했다. 저서로 <서울대 시대정신과 KAIST 프로페셔널리즘>이 있다.